지난해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대한 국정감사에는 KT, 구글, SK텔레콤, 애플코리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넷플릭스 등 기업 경영진이 대거 출석했다.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가 역대 최대 규모의 증인·참고인(161명)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국감장이 의원과 보좌진, 부처 장차관, 산하 기관 사람들로 빼곡했다. 상당수는 국감장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비단 과방위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여타 상임위들도 경영 현안을 챙겨야 할 기업인들을 대거 불러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턴 기류가 바뀌는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등 지도부가 최근 “야당 때처럼 기업 총수를 국감 증인으로 마구잡이 신청하지는 말자”고 의원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다음 달 13일 시작하는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총수에 대한 증인·참고인 신청을 할 때 “국정의 책임 있는 주체인 여당답게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갖고 있던 반기업 이미지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대통령실도 같은 생각이라고 한다. 10월 말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국정감사 시기가 겹친다. 왕성하게 진행될 민간 외교에 기업인들의 참여와 도움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비롯해 관세, 공급망, 안보 등 외치는 물론이고 청년 채용 등 민생분야에서도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진행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을 만나 ‘원팀’ 정신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재계 총수와 대표들을 일단 부르고 보는 식의 증인 채택 관행에 따라 마구잡이로 불려 나왔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이들이 나올 때마다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장시간 대기하지만, 정작 의원들의 질의는 핵심을 비켜간 일이 많았다. 기업 총수나 대표를 불러 놓고는 호통치며 질책하는 사진과 영상을 남겨 의정 활동에 활용하려는 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감을 준비하는 의원들은 “그나마 국감이라도 있어서 이들이 출석을 하고, 자료를 제출하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회가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민원 해결의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기업인들을 국감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소환하는 관행은 이제 재고해야 할 때가 왔다. 다짜고짜 사람을 불러 호통치는 국감이 아니라 쟁점을 정확히 파고드는 국감이라야 신뢰를 얻는다. 꼭 필요한 사람은 증인으로 불러야겠지만 질문이 겉핥기에 그치거나 호통만 칠 거라면 차라리 안 부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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