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사업성 함께 가는 도시정비계획 필요하다[기고/이창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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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은 도입 4년 만에 서울시 정비사업 절차를 크게 바꿔놓았다. 신통기획은 민간 주도 정비사업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정비계획 수립 초기 단계부터 지원하는 제도다. 과거에는 정비계획안이 전체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일괄 심의되며 ‘공공성’ 여부만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기획 단계부터 소위원회를 구성해 사전 자문과 조율을 반복하고, 계획안을 정교하게 다듬어 본심의에 상정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 초기부터 주민·공공·전문가가 함께 논의하는 구조가 마련됐고, 계획의 실행 가능성이 높아졌다.

창신·숭인 일대는 신통기획이 본격 적용된 대표 구역이다. 이 지역은 2007년 뉴타운 사업으로 지정됐다가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로 좌초했고, 2013년 박원순 전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재개발구역에서 해제됐다. 이후 2015년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돼 800억 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지만 노후 주거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주민 불신이 깊어진 상황에서 추진된 신통기획은 단순한 정비계획을 넘어 주민과 공공이 다시 협력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됐다.

신통기획 과정에서는 생활권 연결과 공공 공간 재편이 주요 과제로 설정됐다. 지봉로로 단절된 창신·숭인 생활권을 잇기 위해 투명 엘리베이터, 입체보행교 등 입체적 보행 동선 계획이 제시됐다. 숭인근린공원에서 엘리베이터로 내려와 평지화된 숭인구역을 지나 지봉로 위 보행교를 건너 창신구역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동선은 노약자, 유모차 이용자도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단순한 교통 편의를 넘어, 오랫동안 끊겨 있던 두 생활권을 다시 연결해 공동체 회복의 기반을 마련하는 시도로 의미가 크다.

사업성 문제는 여전히 큰 장애물이었다. 서울 도성과 낙산을 끼고 있는 지역 특성상 고밀 개발이나 고층 건축이 불가능했고,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가 대안이 필요했다. 이에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사용도가 낮은 인근 공원과 채석장 부지를 포함시켜 주택 건설 면적을 확보했다. 채석장 부지는 자원순환시설과 공원을 함께 개발해 주민 편익을 높였다. 주택 공급 여건도 마련했다. 그 결과 과도한 용적률 인상 없이도 요구 가구수를 맞출 수 있는 현실적 계획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신통기획의 핵심은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만 있지 않다. 사업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찾아 실제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고, 공공이 조정자 역할을 맡아 갈등을 조율하며, 전문가가 기술적 해법을 제공하는 구조가 정착될 때 지속 가능한 정비사업이 가능하다.

앞으로 신통기획은 절차 단축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비사업은 한 세대의 주거환경을 바꾸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생활권 분석, 환경 보전, 사회적 합의 과정을 보다 정교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 주민 의견 수렴을 형식적 절차로 끝내지 않고, 실제 계획에 반영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 한다. 사업성 분석도 공공이 사전에 지원해 민간의 위험 부담을 줄이고, 금융·세제 인센티브 등 실행력을 높이는 정책적 장치도 병행돼야 한다.

서울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성장하려면 규제가 아닌 협력, 갈등이 아닌 조율을 중심에 둔 도시계획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신통기획은 그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제도다. 더 많은 구역에서 신통기획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주민·공공·전문가가 함께 만든 계획이 실현될 때 비로소 ‘신속’과 ‘통합’이라는 이름값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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