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없는 핀란드, 한국과 학업성취 비슷
학생-부모 공유하는 교육 철학에서 차이 커
선행학습 없는 교실, 방과 후엔 산 현장체험
우리는 ‘학교교육만으로 충분’ 불가능할까?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최근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결과를 살펴봤다. 한국은 만 15세 학생(중3∼고1) 6931명이 평가에 참여해 수학 527점(6위), 과학 528점(5위), 읽기 515점(4위)을 기록하며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핀란드는 수학 484점, 과학 511점, 읽기 490점을 얻었고, 에스토니아는 수학 510점, 과학 526점, 읽기 511점을 기록했다. 두 국가 모두 OECD 평균(수학 472점, 과학 485점, 읽기 476점)을 크게 웃돌며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우수한 성과를 나타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은 매년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반면,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는 사교육이 거의 없는데도 유사한 학업성취도를 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사교육비 총액은 약 29조2000억 원에 달하고, 초중고교 전체 학생의 약 80%가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막대한 비용이 공교육의 많은 기능을 대체하면서까지 지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중심의 교육 체계가 확고한 북유럽 국가들과 학습 성과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은 사실 충격적이다.
사교육이란 의무교육 과정 밖 교육인데, 한국의 교육 현실은 ‘의무 사교육’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현실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
물론 한국과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 체계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사회적 맥락과 문화적 배경 역시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필자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방문하면서 주목한 것은 교육 체계나 법령과 같은 제도적 장치 자체가 아니다.
핀란드의 한 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해 학생들과 인터뷰를 하고, 한 가정을 찾아 중학생과 고등학생 자녀,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경험한 신선한 충격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들이 보여준 교육에 대한 철학과 접근 방식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핀란드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가장 먼저 놀란 점은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에 관해 학생들에게 질문하자 돌아온 답변은 신선했다. “학생이 수업 중에 졸린다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건 아픈 것이니까요.” 이들에게 수업 시간 중 졸음은 건강상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학원에 있다가 잠이 부족해 정작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황을 상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선행학습에 관한 질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해당 학년에 맞는 진도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는데, 왜 굳이 선행을 해야 하나요?”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이들에게는 교육과정이 단계별로 설계된 체계라는 신뢰가 있었다. 또 만약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 “부족한 부분은 당연히 스스로 공부해야죠”라는 답변에서는 자율적 학습에 대한 책임의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방과 후 시간 활용에 관한 답변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어떤 학생은 “전 창업을 했어요. 지금은 경영 공부에 집중하고 있어요”라고 했고, 또 다른 학생은 “외교를 공부하려고 국회의원을 직접 인터뷰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과외 활동이 아니라 사회 현장에서 배우는 살아 있는 학습이었다. 특히 핀란드에서는 6학년과 9학년 학생들이 단기 취업 경험을 하는데, 주목할 만하다. 공공기관, 레스토랑, 가업 등에서 일하며 어린 학생이 근로계약을 맺고 세무와 금융시장을 직접 체험한다. 이는 그저 ‘스펙 쌓기’가 아닌 실제 사회를 경험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실제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핀란드에서 목격한 현실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한국에서는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 것일까. 이는 사교육비를 줄이자는 경제적인 구호를 넘어서는 문제이다. 부모가 자녀의 학원 시간표를 짜고,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정작 공교육을 학원의 보조 수단으로 취급하는 현재의 인식에 대전환이 전제돼야 한다. 아울러 교육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뒷받침돼야 한다. 필자가 핀란드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은 앞으로 어떤 가치와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묻는 본질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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