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앞 아이스크림과 솜사탕 파는 수레, 앰프로 신나게 퍼지는 노래, 운동장에서 돗자리 펴고 먹은 부모님표 김밥 도시락.
바람은 시원하고 기분 좋게 햇빛이 내리비치는 가을이면 학창 시절 운동회를 떠올리는 어른이 많을 것이다. 운동회는 학교의 연중행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운동회가 잘 열리지도 않고, 하더라도 예전과 다르게 작고 조용하다. 민원 때문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까지 운동회 소음으로 접수된 민원은 총 62건이었다. ‘음향 장비 소리가 시끄럽다’, ‘장기 자랑 연습으로 애들이 소리를 질러 시끄럽다’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교육청에 접수된 것만 따진 수치라 학교에 직접 제기된 것까지 포함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은 민원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학교에서는 운동회 기획이 골칫거리다. 서울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2년에 한 번, 급식 먹기 전인 오후 1시까지만 하는데 앰프를 켜면 주변 아파트에서 바로 연락이 온다”며 “아기가 자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험 기간인데 제정신이냐 등으로 항의한다”고 전했다.
이에 최근 운동회는 학년별 또는 2, 3개 학년 정도로 묶어 소규모로 하는 경우가 많다. 줄다리기, 공 던지기 등 아이들이 소리를 많이 지를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은 체육관에서 한다. 배경음악을 틀지 않거나 사회자가 아이들에게 “소리 너무 많이 지르면 안 돼요”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운동회를 소규모로 돌리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공간 협소를 이유로 학부모 참여를 막기 위해서다. 지방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체육을 못 해도 즐기면 되는데 부모가 와서 직접 보고 ‘뭐 저런 걸 시키냐. 우리 애가 상처받았다’고 하는 부모가 있다”고 말했다. 뛰다가 아이가 살짝 넘어지기라도 하면 항의하고, 운동회 때 왜 급식을 안 주고 귀찮게 하느냐는 말도 나온다.
민원은 갈수록 학교 교육의 범위를 쪼그라뜨리고 있다. 소풍이나 숙박형 수학여행은 요즘 학교의 기피 대상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교사가 책임을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서울 한 교사는 “소송까지 가지 않더라도 소풍 때 찍어서 공유한 사진에 우리 아이가 빠져 있다, 제공된 식사가 부실하다, 우리 애는 그런 데서 못 잔다는 둥 불만이 상상을 초월한다”며 “사고 위험 등으로 학부모에게 의견을 묻는다며 설문 조사해 안 간다”고 설명했다. 체육 시간에 딱딱한 공으로 배구를 했다가 손가락이라도 삐끗하면 부모들이 난리 난다고 탱탱볼로 한다는 교사도 있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전부가 아닌 세상이다. 운동도, 각종 체험활동도 가족끼리 혹은 사교육을 통해 더 좋은 환경에서 이미 경험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가 아니면 경험 못 해보는 아이들도 많다. 민원에 하도 시달리다 보니 교사들 사이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편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공교육은 쪼그라들면 안 된다. 우리의 아이들이 잘 클 수 있게 지적하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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