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은 ‘기계적 항소 자제’, 법원은 ‘1심 재판 강화’가 먼저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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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로써 1948년 8월 정부 수립과 함께 설치된 검찰청은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수청 신설은 공포 후 1년이 지난 2026년 9월경 시행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내 검찰체험관. 2025.9.30/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1, 2심 재판부에서 모두 무죄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검찰의 기계적인 항소·상고로 국민이 고통을 받는다고 지적한 지 하루 만에 이런 개정안이 나왔다. 그간 검찰의 항소 관행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다. 무엇보다 무분별한 항소로 피고인들이 과도한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미국에선 헌법상 ‘이중 위험 금지’ 원칙에 따라 무죄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서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검사의 항소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 검사 항소가 법적으로 제한될 경우 실체 규명 기회가 줄어들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검찰의 항소권 남용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법원 사법연감(2024년 기준)에 따르면 1심 무죄 사건이 2심에서 유죄로 바뀐 비율은 15.2%이고, 2심 무죄가 3심에서 유죄로 뒤집힌 건 4.4%에 불과하다. 검찰에선 1심 무죄 판결이 나오면 면피용으로라도 항소하고 보는 관행이 이어져 온 것이다. 선고 형량이 검찰 구형보다 크게 낮을 땐 혐의 입증이 충분했는지 돌아보기보단 구형 대비 선고형의 비율만 따져 기준에 미달하면 기계적으로 항소하는 일이 빈번했다.

대륙법계 국가들은 대체로 검사의 항소를 허용한다. 하지만 검찰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 무분별한 항소를 자제한다는 게 우리와 다른 점이다. 독일 검찰은 법률적 오류를 따질 때만, 일본 검찰은 1심에 명백한 흠결이 있다고 판단할 때만 항소한다. 2023년 일본 1심 판결 항소 사건 중 검찰이 항소한 건 1.2%에 불과했고, 이들 사건 약 70%에서 법원이 검찰 손을 들어줬다. 항소권의 적절한 행사는 법의 문제이기 이전에 검찰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입법 논의에 앞서 검찰이 신중하게 항소·상고를 하도록 내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우선 돼야 한다.

1심 재판의 신뢰도를 높여야 하는 과제도 있다. 항소 제한은 1심에 오판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1심 재판은 경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재판부나 단독 판사가 맡고 있고, 과도한 업무량과 잦은 재판부 교체로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심을 충분히 강화하지 않은 상태로 항소만 제한할 경우 1심의 미흡한 판단이 그대로 확정될 위험이 있다. 검사의 항소·상고 제한은, 큰 논란 없이 당장 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할 과제들부터 시급히 해나가면서 공론화 작업을 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검찰 항소 제한#무죄 판결#대법원 상고#항소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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