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관석]‘후관예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13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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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법무팀이 소송에서 핵심적으로 살피는 것 중 하나가 재판부 배당이다. 담당 판사의 출신 대학과 인맥, 검사 경력 유무, 평판까지 꼼꼼히 본다. 요즘엔 하나가 더해졌다. 어느 로펌 출신이냐는 것이다. 재판부에 특정 로펌 출신 판사가 있으면 그 로펌 변호사를 소송팀에 끼워 넣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변호사가 같은 로펌 출신이면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기대에서 비롯된 이른바 ‘후관예우(後官禮遇)’다.

▷이는 2013년 다양한 사회생활을 경험한 변호사 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가 시행된 뒤 나타난 단면이다. 법관의 ‘친정’ 로펌 변호사를 기용하면 이들이 제출한 서면 하나라도 판사가 좀 더 신경 써서 읽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판사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작은 개연성에도 솔깃해지는 게 송사를 받아든 사람들의 심리다.

▷“특정 로펌 출신 경력 법관이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한 재판부의 좌우 배석이 같은 로펌 출신인 경우도 있었다.” 5년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런 지적이 나왔다. 국회는 2020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변호사 출신 판사가 퇴직 2년 이내 과거 근무 로펌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퇴직 2년이 지난 변호사 출신 판사가 이미 수백 명을 넘는다. 이 조항만으로는 세간의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 민사소송법에는 이런 규정이 아예 없다. 법원 예규로 이를 제한하다 보니 ‘후관예우 방지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새로 임용된 법관 676명 중 로펌 변호사 출신은 355명(52.5%)이다. 김앤장을 비롯해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 등 대형 로펌 출신은 166명(24.6%)이었다. 4분의 1이 대형 로펌 출신인 것이다. 올해 임용된 법관 153명 가운데 로펌 변호사 출신과 대기업 사내변호사 출신만 83명(54%)에 이른다. 반면 국선 전담 변호사 출신은 16명이었다. 로펌도 소속 변호사가 법관에 임용되는 것을 반긴다. 로펌의 판사 배출 수는 의뢰인이나 예비 법조인의 로펌 평가 잣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후관예우를 막으려고 “대형 로펌 출신의 법관 임용에 상한선을 두자”는 주장도 나온다. 법원은 뽑고 보니 쏠림이 나타난 것으로 설명하지만 후관예우에 따른 재판 불공정, 이해 충돌 가능성을 그냥 둘 것이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 사건 재판이 2년, 3년을 넘기는 사례도 있는 만큼 ‘퇴직 2년 제한’ 기준을 더 높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조일원화의 취지는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 판사들의 ‘책상머리 판결’을 줄이고 다양한 경험을 사법 판단에 반영하려는 데 있다. 법원이 법관 선발 기준과 절차를 더 촘촘히 다듬어야 한다는 의견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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