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아프리카로 뻗어가는 ‘K-AI 로드’ 외교[기고/이원태]

  • 동아일보

이원태 국민대 특임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이원태 국민대 특임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반세기 전 한국의 건설 인력은 중동 사막에서 땀을 흘리며 국가 도약의 토대를 쌓았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다시 사막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삽과 콘크리트가 아니라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들고서다. 11월 18일 한-아랍에미리트(UAE) 정상회담은 ‘중동 AI 붐’이라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대통령이 합의한 ‘스타게이트 UAE’ 프로젝트는 그 출발점이다. 오픈AI, 엔비디아 등이 아부다비에 최대 5GW(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초기 투자금만 30조 원 이상이다. 과거 중동에 도로와 건물을 세웠던 한국이 이제는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국가로 진화한 것이다.

데이터센터는 21세기의 정유 시설이다. 석유가 20세기 부의 원천이었다면, 데이터와 AI는 앞으로의 부를 결정한다. 한국이 UAE의 데이터 주권을 관리하는 핵심 파트너가 됐다는 것은 중동·아프리카로 뻗어갈 AI 공급망의 전략적 거점을 확보했음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K-AI 로드’ 개척의 첫 이정표다.

이 대통령은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K-AI 로드를 아프리카까지 확장했다. G20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정상회의를 열며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을 알린 자리였다. 한국은 이 무대에서 9월 유엔총회에서 제시한 ‘AI 기본사회’ 구상을 한층 구체화했다. 이 비전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APEC AI 이니셔티브’, 이번 G20 정상회의의 ‘AI for Africa’ 이니셔티브와 맞물리며 글로벌 AI 규범 논의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행동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가나·탄자니아의 이공계 교육 지원, 르완다 소프트웨어 특성화고 설립 등 구체적 사례를 통해 한국의 ‘AI 디지털배움터’ 경험을 아프리카로 확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중동에서의 협력이 단순한 기술 거래가 아니라 AI 인프라에서 교육 및 기술 생태계로 이어지는 ‘공동 번영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또 “보유국과 수요국이 혜택을 공유하는 (핵심 광물의) 안정적 공급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AI 인프라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 그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광물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협력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가장 주목할 성과는 한국이 2028년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공식 선언문에 명시된 점이다. 이로써 이 대통령은 한국 정상 최초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APEC, G20 의장직을 모두 수임하게 됐다. 물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데이터 국경 이동 문제, 파트너 국가들의 척박한 인프라 환경은 우리 기업과 정부에 난제가 될 수 있다. 정부는 민관 합동의 정밀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이번 순방을 통해 중동의 데이터와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잇는 K-AI 로드의 윤곽이 드러났다. 한국은 AI를 통해 외교의 지평을 확장했다. 사막에서 타오른 혁신의 불씨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세계로 번지길 기대한다. 이제는 실행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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