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언제나 이중의 얼굴을 가진다. 한쪽에서는 흥을 돋우는 주막의 깃발이 펄럭이고 만개한 국화의 향기가 마음을 적시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까닭 모를 쓸쓸함이 있다. 눈앞의 풍경은 평화롭지만 그 안에는 허무감과 역사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시는 그 모순의 계절을 인간적으로 드러낸다. 혁신 정치의 꿈이 좌천되자 시인은 무력감을 절감한다. 상실의 골이 깊었던지 귀밑머리까지 하얘졌지만 분노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녹봉만 잔뜩 챙긴다’는 자책이 상심의 무게보다 짙었던 것이다. ‘언제 전원으로 돌아가랴’는 물음은 모순의 현실을 벗어나고픈 갈망처럼 보인다.
당시 시인은 아직 마흔도 안 된 나이. 이 시는 그러므로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려는 체념의 노래가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서 되뇌는 고뇌의 노래로 읽힌다. ‘사슴 수레’란 사슴 한 마리를 실을 만큼 자그마한 수레를 말한다. 언젠가 야인이 되면 간소한 행장을 차리고 떠나겠다는 무욕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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