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역사의 죄인 될 수 없다” 톈안먼 진압 거부한 사령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9일 23시 18분


기갑사단, 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등으로 구성된 중국 38집단군은 우리나라의 수도방위사령부 격인 베이징군구 소속의 최정예 부대였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쉬친셴 38집단군 사령관은 덩샤오핑 정권에서 촉망받는 장군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쉬 전 사령관이 ‘병력을 동원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가 항명한 이유가 36년 만에 재판 영상을 통해 공개됐다.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89년 5월 18일 쉬 전 사령관은 베이징군구 사령부의 긴급 호출을 받고 회의에 참석했다. 계엄령을 선포하기로 결정한 중국 지도부는 쉬 전 사령관에게 1만5000명의 병력을 계엄군에 합류시키라고 명령했다. 군이 출동해 톈안먼 광장을 가득 채운 대학생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면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쉬 전 사령관이 “동의할 수 없다”고 하자 다른 회의 참석자들은 너무 놀라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한다. 그는 사령관 자리를 뺏기고 재판에 넘겨졌다.

▷최근 유튜브에 공개된 비밀재판 동영상을 보면 그는 “시위는 무력이 아니라 정치적 방법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이 일(무력 진압)에 잘 대처한 군인은 영웅이 되고 잘못 대처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대신 양심을 따르는 길을 택한 것이다. 2021년 타계한 쉬 전 사령관은 자신이 바랐던 대로 “정치적 격변기에 도덕적 용기를 지킨 사람”(영국 이코노미스트)이라는 등의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은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가 고문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숨졌다. 전남경찰청 안에는 ‘안병하 공원’이 조성돼 그를 기리고 있다. 12·12 쿠데타 당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도 빼놓을 수 없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될 수 있었던 것도 명령을 어기고 국회 진입을 거부했던 조성현 대령 같은 군인들의 힘이 컸다. 오랫동안 명예롭게 남을 이름들이다.

▷반면 개인의 영달을 위해 또는 군인은 무조건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지시에 따른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의 끝이 좋을 수는 없다. 12·12와 5·18에 동참한 군인들은 한때 출세 가도를 달리며 ‘영화’를 누렸지만 결국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12·3 계엄 당시 위헌·위법한 대통령의 명령을 좇아 군경을 출동시킨 군 사령관들과 경찰 수뇌부 역시 법정의 피고인석에 세워졌다. 하지만 법적인 처벌보다 무거운 처벌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잘못 대처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쉬 전 사령관의 말은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중국#38집단군#톈안먼 민주화 시위#쉬친셴#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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