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069개 법에 1만7300개 형벌조항… 규제개혁은 여기부터

  • 동아일보

정성호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성호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4일 국무회의에서 “1069개 법률에 형벌 규정이 존재하고 처벌 대상 위반행위만 1만7300여 개에 달한다”라고 보고했다. 법무부의 수장조차 “무엇이 범죄이고 아닌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라고 탄식했다. 이 정도라면 70년 넘은 형사법과 형벌 체계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전체 법률의 약 64%인 1069개 법률에 형벌 규정이 있다고 한다. 인구가 우리의 1.6배인 독일(약 250개 법률)의 4배에 이를 정도로 ‘형벌 과잉’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전과가 가장 많을 것”이라며 “웬만한 일은 다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보니 검찰과 수사기관의 권력이 너무 커지고 검찰 국가화됐다는 비판까지 나온다”라고 했다. 형벌 남발과 검찰 권력 남용을 막는 형사법 개혁을 주문한 것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의 틀을 유지하고 있는 현행 형벌 체계는 배임죄, 직권남용죄, 명예훼손죄 등 모호하고 추상적인 규정이 많다. 달라진 경제 환경에 맞지 않고 과태료와 과징금 등 경제 제재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숙박업이나 미용실 등 상호 변경 신고를 늦게 하거나 예비군 훈련을 빠졌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고 전과자가 되는 식이다. 이 대통령도 “도덕 기준과 형벌 기준이 구별되지 않는 원시사회” 등의 강도 높은 지적을 쏟아냈다.

특히 경제계가 전면적 개편을 요구하는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넓은 데다 처벌 수위도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무겁다.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위험성만으로도 형사 처벌을 받기 때문에 수사기관과 법원의 자의적 해석이 늘 문제가 된다. 기업 이사가 경영상 판단으로 내린 결정으로 발생한 손실까지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어 ‘걸면 걸리는 법’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형사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 차원에서 배임죄를 개선하고 과징금 액수 상향 등 금전적 처벌을 강화하는 경제형벌 합리화도 추진하고 있지만, 속도를 더 내야 한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441개 경제형벌 합리화 대상 규정 중 112개만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됐다.

툭하면 징역이나 벌금과 같은 형벌의 회초리를 드는 ‘형벌 만능주의’ 사회에서 기업 활동이나 창의적인 혁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기관의 자의적 형벌권 남용으로부터 보호하고 기업 활동의 족쇄를 풀려면 모호하고 촘촘하고 무거운 형벌의 그물망부터 바꿔야 한다. 각종 특별법의 형벌 규정을 정비하고 과징금이나 과태료 등 경제 제재를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형벌 합리화가 규제 개혁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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