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과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방조한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앞서 2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모습. 그는 보수, 진보 정부에서 모두 고위직에 기용돼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올랐다. 뉴스1
‘국무총리를 두 번 하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던 관운의 사나이’.
내란 특검이 29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불구속 기소하자 그의 지난 정치 역정에도 관심이 쏠렸다. 한 전 총리는 55년간 공직에 몸담은 동안 국무총리를 2번을 역임했고 진보·보수 정권을 넘나드며 경제부총리·주미대사 등을 지냈다. 경제와 산업, 외교 분야에서 최고위직을 두루 맡으며 역대 손꼽히는 ‘엘리트 관료’로도 평가 받았다. 대통령을 빼고는 대한민국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다 누린 셈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뉴시스
그런 그가 칠순이 넘은 나이에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피고인’ 신세로 전락하자 정치권에서는 탄식과 동시에 인생무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 YS-DJ 정부서 기용, 노무현 때는 총리로
1949년생인 한 전 총리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듬해 수석으로 졸업한 한 전 총리는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옛 산업통상자원부), 특허청 등을 거쳤다. 김영삼 정부에선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과 통상산업부 차관을, 김대중 정부에서는 새로 출범한 외교통상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3년간 맡았다.
2012년 무역협회장이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
노무현 정부에선 국무조정실장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38대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노 전 대통령은 한 전 총리를 두고 ‘품성이 좋다’고 평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후 보수 정권으로 바뀌었지만 한 전 총리의 관운은 이어졌다. 이듬해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미 대사로 발탁돼 3년간 외교 통상 전문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 尹 정부서 공직 복귀, 두 번째 총리직
대사 퇴임 후 공직을 잠시 떠났던 한 전 총리는 윤석열 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초보 정치인’ 윤 전 대통령은 경륜과 안정감이 있는 한 전 총리에게 총리직을 제안했고, 한 전 총리는 삼고초려 끝에 이를 수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여야 대립이 극심한 상황 속에서 약 3년간 재임하며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한 전 총리는 이 기간 중 한 차례 물러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자 한 전 총리를 포함해 대통령실 수석급 참모진 전원이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차기 총리 물색 작업이 쉽지 않자 한 전 총리가 유임됐다. 그로부터 약 8개월 뒤 비상계엄이 터졌고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5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께 드리는 약속’을 주제로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2025.5.2/뉴스1
● 조기대선 뛰어 들었으나 단일화 실패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리자 5월초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대통령이 궐위 상태인데 선거를 관리해야 할 총리가 선거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을 감수한 행보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대선 후보 단일화를 공언했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단일화에 응하지 않으면서 국민의힘은 한밤 중 대선후보를 한 전 총리로 교체하며 뭇매를 맞았다. 한 전 총리는 대선 캠프까지 만들고도 단일화 관련 당원 투표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대선 출마 선언 9일 만에 하차했다.
이후 이재명 정부 출범, 내란 특검 수사가 이어지자 한 전 총리의 입지가 점점 좁아졌다. 특검은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한 전 총리에 대해 수사망을 좁혀갔고, 지난달 2일 한 전 총리에 대한 첫 조사를 시작으로 총 세 차례 조사를 진행한 끝에 내란 우두머리 방조, 위증 등의 혐의로 한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27일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또 한 전 총리의 그간 경력 등도 기각 사유로 내세웠다.
12·3 비상계엄 과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방조한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25.8.27/뉴스1
● 특검 “계엄 막을 수 있던 위치, 책임 엄중”
내란 특검은 28일 브리핑에서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데 국민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특검은 기각 이틀 만인 30일 한 전 총리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19일 “본래 한덕수라는 사람은 사려 깊고 신중한 사람이었는데 끝까지 수분(守分)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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