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亞동맹국에 국방비 증액 요구… 주한미군 재편 신호탄 될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1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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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국방비, GDP 5%로’ 첫 기준 제시
“北-러 위협은 동맹국이 자체 대응”…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일환
北 겨냥한 확장억제 축소 가능성도… 韓정부 “안보-재정 검토해 결정할것”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 육군 창설 250주년 열병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9일 한국 등 아시아 동맹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을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워싱턴=AP 뉴시스
“우리는 이제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동맹국이 따라야 할 동맹국 국방비 지출의 새로운 기준을 갖게 됐다. 동맹국들이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18일(현지 시간) 미국 상원 의회청문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요구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5% 국방비 지출 기준을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에도 요구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한 것. 헤그세스 장관은 “우리가 동맹국보다 그들 자신의 안보를 더 원할 순 없다”고도 했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북한의 재래식 전력 등 미국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위협에는 한국 등 동맹국들이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비 ‘5% 룰’을 아시아 동맹국에 요구한 것이 동아시아에 미군 전력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대신 중국에 대한 대응을 위해 주한미군 규모를 축소하거나 역할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물론이고 북한을 겨냥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ence)가 축소되는 등 한미 군사동맹의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 한국에 ‘5% 룰’ 꺼낸 美 “상식적”

숀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19일 아시아 동맹국에 GDP의 5% 국방비 지출 기준을 적용하는 데 대해 “중국의 엄청난 군사력 증강과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고려할 때 상식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시아 동맹국들은 자신과 미국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더욱 균형적이고 공정한(balanced and fair) 동맹 분담을 하는 것이 상식적”이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나토에 국방비 지출 기준을 기존 GDP 대비 2%에서 5%로 올릴 것을 요구해 왔다. 다만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나토와 달리 한미 상호방위조약 같은 양자 안보협정을 맺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에 국방비 지출 기준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국방비 지출 확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괌과 주한·주일미군을 중국의 대만 침공 등에 대응하는 역할에 집중시키는 대신에 북한 러시아의 위협은 동맹국이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28일 온라인 세미나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라며 “힘을 통한 평화를 보장하려면 때로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각국 상황과 재래식 전력 확보 현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에도 일괄적인 5%를 제시한 건 주한미군이 범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으니 한국이 안보 부담을 2배, 3배 더 많이 짊어지라는 상징적인 수치를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 주한미군 재조정-확장억제 연계될 수도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에 ‘5% 룰’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내놓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나토는 24일부터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2032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로 증액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인접한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들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셀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관세 협상뿐 아니라 주한미군 규모 축소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연계해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워싱턴 선언’ 등 대북 확장억제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에 대한 방어를 한국이 주도하게 되는 만큼 북핵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차원의 확장억제 강화에 선뜻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군 안팎에선 5% 기준이 현실성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국방 예산은 61조2000억 원으로 지난해 명목 GDP 대비 2.39% 수준인데, 이를 5% 수준으로 맞추려면 당장 내년 국방예산을 130조 원에 가까운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방예산이 정부 전체 예산에서 약 10%를 차지하는데 미 정부 요구대로라면 이를 20%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참가를 검토하면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국방비 증액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한국은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매우 높은 국가라는 점을 들어 미국을 설득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외교부는 이날 “정부는 엄중한 안보 환경 속에서 우리 국방력을 지속적으로 강화시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국방비를 증액해 오고 있다”며 “국방비는 국내외 안보 환경과 정부 재정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우리가 결정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협상을 북한에 대한 자체 방어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철균 전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은 “이번 미국의 요구가 북한의 핵 위협이 계속되는 등 불안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 국방예산을 늘려 자체 방어 역량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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