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튿날인 21일(현지 시간) 워싱턴국립대성당에서 열린 국가기도회에 참석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 능력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규정한 가운데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21일(현지 시간) “최우선 목표는 평화 증진(promotion of peace)과 분쟁 회피(avoidance of conflict)”라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외교 우선순위가 긴장 완화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브로맨스’를 강조한 만큼 대북정책 우선순위가 비핵화 대신 도발 억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이날 취임사에서 “평화가 없으면 강하고, 번영하고, 잘사는 나라가 되기 어렵다”며 “글로벌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평화 증진과 분쟁 회피”라고 밝혔다. 앞서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유산은 평화중재자(peacemaker)가 될 것”이라던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 발언을 재확인한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평화’를 외교 우선순위로 내세운 것은 외교 분야에서도 중간선거가 열리는 2027년 전까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중동 안정 등 핵심 외교 의제와 관련해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표를 내건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중국, 러시아에 이은 외교 과제로 꼽히는 북한 문제 역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비핵화 대신 긴장 완화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20일 집무실에서 “북한 문제는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며 비핵화 실패에도 불구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북한의 도발 억제는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 능력 보유국’으로 규정한 가운데 트럼프 2기 대북정책 우선순위가 긴장 완화로 바뀌면 사실상 ‘북핵 용인’의 수순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정책을 이끌 핵심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 2019년 1,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섰을 당시부터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루비오 장관은 2019년 2차 북-미 회담 직후 “나는 그(트럼프 대통령이)가 (북한 비핵화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앞으로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환상”이라는 지적에 “더 광범위하게 대북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며 CVID 포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또 마이클 왈츠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2018년 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북한의 올리브 나무(olive branch) 평화 제안을 승낙해야 하지만 매우 회의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는 2017년 “역사는 북한이 (핵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 “미 대북정책 확정 전 대북 로드맵 전달해야”
루비오 장관은 이날 미국 주도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하고 쿼드 멤버인 일본 호주 인도 외교장관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 취임 첫날부터 중국 견제 안보협의체를 가동하며 아시아 동맹국 단속에 나선 것. 정부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루비오 장관의 전화 통화를 추진 중이다.
외교안보 원로들과 전문가들은 ‘정상 공백’을 맞이한 우리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액션플랜’을 가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트럼프 2기 대북 정책이 확정되기 전 우리의 대북 로드맵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워게임’으로 불렀던 3월 한미 연합훈련 정상 실시를 미 행정부에 관철시켜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00일 내 추진하고 있는 방중을 한미 및 한미일 협력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방중 계기에 권한대행 체제인 한국을 거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만약 일본 방문 등이 조율될 경우 대북 억제를 목표로 한 한미일 회담을 추진해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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