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다 휴전을 이틀 앞두고 20세의 나이로 산화한 국군 용사가 70여 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지난해 11월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 일대에서 발굴한 국군전사자 완전 유해의 신원이 국군 제7사단 소속 ‘고(故) 정인학 일등중사(현 계급 하사)’로 확인됐다고 19일 밝혔다.
고인은 올해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된 호국영웅이다. 또한, 철원군 주파리에서 집단으로 발굴된 유해 19구(인식표 7개) 중 첫 번째로 신원이 확인됐으며, 2000년 4월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한 이래 249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호국영웅이다.
이번 신원확인의 결정적 단서는 함께 발굴된 고인의 이름이 새겨진 ‘인식표’였다. 국유단은 인식표의 이름을 근거로 병적부를 확인한 후 행정관서와 협력해 유가족의 소재를 확인하고 유가족 찾기 2일 만에 여동생을 찾아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다. 이후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비교 및 분석을 통해 남매 관계(오빠-여동생)를 확인했다.
고인의 유해는 작은 반딧불을 놓치지 않고 제보한 대대장과 유해 발굴에 참여한 국군 장병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상의 큰 빛을 볼 수 있었다.
7사단 예하 대대장인 정준혁 중령은 지난해 10월 작전지역 지형정찰 간 지표면에 노출돼 있던 방탄 헬멧과 수통을 발견하고 국유단에 유해 소재를 제보했다. 정 중령이 지휘하는 부대가 같은 해 전반기에 유해 발굴에 참여했기에 이를 쉽게 넘기지 않았던 것이다.
제보를 받은 국유단은 현장 탐사 간 유해 발굴 기록병이 유해를 발견했다. 현장 발굴 팀장은 함께 발견된 M1 소총 등 유품 출토 상황을 고려해 구획을 확장해 발굴했고, 그 결과 유해 7구를 추가로 발굴할 수 있었다.
고인은 방탄조끼를 착용한 채 구부려 엎드려진 모습으로 묻힌 상태였으며, 해부학적으로 완전 유해였다. 완전 유해로 발굴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한 지점에서 8구가 발굴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드문 경우다.
고인은 1932년 12월,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4남 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부친이 운영하는 농산물 소매업을 도우며 생활했다.
그러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어느 정도 전선이 고착화 된 1951년 9월, 18세의 나이로 입대했다. 국군 7사단 소속으로 2년 동안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고, 휴전 협상 막바지였던 1953년 7월에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 참전한 후 휴전 2일을 앞두고 전사했다.
당시 전투는 국군 제7·11사단이 금성지구(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의 공격을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해 전선을 안정시킨 공방전이다.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19일 충청남도 천안시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유전자 시료를 제공한 여동생 정병숙 씨(69)는 고인이 전사한 이후 태어났기에 생존 당시 모습은 알지 못하지만,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매년 현충일이면 정읍시 충무공원에서 열리는 추모 행사에 데려갔기에 자주 오빠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1월 국유단 탐문관이 시료 채취하러 온다고 할 때는 어머니가 꿈에 보였고, 유해를 찾았다고 (국유단에서) 방문하시겠다고 한 전날에도 아버지가 꿈에 나왔다. 아마 오빠의 유해를 나보고 받으라고 나타나신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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