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은 옥류관 냉면을 먹을 수 있을까[주성하의 ‘北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8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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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2005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이재명 대통령. 이듬해 본인의 SNS에 올렸다. 기사 중간에 있는 사진들은 그가 당시 올린 나머지 사진들이다.
2005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이재명 대통령. 이듬해 본인의 SNS에 올렸다. 기사 중간에 있는 사진들은 그가 당시 올린 나머지 사진들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은 분단 이후 남북 관계가 최고로 좋았던 해였습니다. 그런 시절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의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해엔 마음만 먹으면 민간인도 큰 제한 없이 평양 관광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통일교 산하 평화항공여행사는 서울에서 평양 관광상품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1박2일 일정에 110만 원이나 했지만 예약이 몰렸습니다.

평양 관광 일정은 단순했습니다. 전세기를 타고 서해를 돌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면 김일성 동상이 있는 만수대를 우선 방문하고, 주체사상탑, 개선문, 역사박물관, 만경대 순으로 일정이 이어졌습니다. 투숙은 4성급으로 자처하는 보통강호텔에서 했고, 300달러를 내면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 대집단체조를 일등석에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2005년에 평양을 방문한 인원은 모두 39만7192명이었는데, 이중 금강산 관광객 29만8247명을 빼면 9만8945명이 평양 등 금강산 이외의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이 9만8945명 중에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2005년의 이 변호사는 인생에서 나름 ‘한가한’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그 이전에 인권·노동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거의 매년 ‘별’을 하나씩 달고 있었습니다.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을 고발하면서 검사 사칭을 했다는 이유로 150만 원의 벌금을 확정받았습니다. 물론 그가 고발했던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은 실제로 억대 뇌물을 받은 것이 확인돼 2007년 징역 1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2004년 이 변호사는 별을 두 개나 받았습니다. 하나는 그해 3월 공공병원 성남시립의료원 건립과 관련해 의회 본회의장에 난입했다는 이유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돼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또 두 달 뒤엔 혈중알코올농도 0.158%로 음주 운전에 적발돼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립의료원 사건으로 수배 중에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2006년 8월 성남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습니다. 2005년은 그의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의 중간에 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돈을 벌려고 애쓰던 시기였기도 했습니다. 2005년부터 그의 변호사 사무실은 폭력, 살인, 강간 사건도 변호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되는 일도 없고, 해놓은 일도 없던 시기 그의 눈에 평양 관광 상품이 들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당시 한시적으로 누구에게나 평양 관광이 허락됐다고는 하나 북한에 관한 관심이 없었다면 선뜻 결심하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2005년 한국 인구가 4818만 명이었으니 그해 방북한 9만8945명은 인구의 0.2%, 즉 500명 중 한 명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당시의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18년 11월 15일, 경기도에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 5명이 나타났습니다. 경기도가 판을 깐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때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는 “옥류관 냉면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라며 경기도에 옥류관 1호점 유치를 제안했습니다. 이에 이 부위원장은 “옥류관 분점이 경기도에 개관하기 전에 한번 (북측에) 왔다 갔으면 좋겠다”라며 초청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수행단에서 밀려난 ‘모욕’을 딛고 절치부심해 독자적인 방북 방법을 모색했던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드디어 끈을 잡은 순간이었습니다. 경기도에 평화부지사라는 자리를 신설해 이화영 전 의원을 영입했던 것에 대한 보답을 받는 듯했습니다.

방북을 활용해 몸값을 올리려는 시도는 절절했지만, 끝내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이듬해 2월 하노이 회담의 실패와 1년 뒤 찾아온 코로나 사태 등이 원인입니다. 그리고 이화영 부지사와의 인연은 그를 나락으로 끌고 들어갈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넘겨준 ‘행운의 열쇠’를 뜻밖의 선물로 받고, 북한을 활용하지 않고도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옥류관 냉면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라고 지금쯤 김정은에게도 관련 분석 파일이 올라갔을 겁니다.

아마 김정은은 좀 의아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북한에 온 남쪽 사람에게 옥류관 냉면을 먹여 보내지 않은 적도 있었던 말인가”라며 2005년의 상황을 학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옥류관은 한국 방문객들의 필수 방문코스처럼 활용되지만, 2005년 가을엔 하도 많은 남쪽 사람이 단기간에 몰려와서인지 옥류관 냉면도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일부는 먹었겠지만, 당시의 이재명 변호사는 북한이 옥류관 냉면을 일부러 접대할 레벨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옥류관 냉면을 먹고 있는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  동아일보 DB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옥류관 냉면을 먹고 있는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 동아일보 DB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중에 옥류관 냉면을 먹을 수 있을까요. 2018년 4월 옥류관 수석 요리사를 판문점에 데리고 나타났던 김정은이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옥류관 냉면으로 생색을 낼 마음이 생길까요.

이 대통령은 20년 전 북한을 방문한 0.2%에 속했던 사람입니다. 북한에 대한 관심사가 예사롭진 않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미 이 대통령의 그림은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북 전문가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국정원장 후보자로 발탁된 것은 북한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순간마다 다리를 놓은 것은 통일부보단 국정원이었습니다. 특히 한국 대통령의 방북 때엔 예외가 없었습니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의 1차 남북정상회담 때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이 두 차례나 평양을 사전에 방문해 회담을 조율했습니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의 2차 남북정상회담 직전에도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2차례나 사전 방북해 의제를 조율했습니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때도 ‘국정원-통일전선부 라인’이 접촉 창구였습니다. 멀리 보면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실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니 이종석 국정원장 임명이 무슨 뜻인지는 북한도 너무 잘 알 것입니다. 물론 당분간은 남북관계 전진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진 않습니다. 북한은 2023년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놓고 남북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과의 관계를 빠르게 복원할 만한 절실함은 없습니다.

북한은 이미 러시아에 바짝 붙어 숨구멍을 열어놓았습니다. 또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당근도 마땅치 않습니다.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여전히 유효하므로 한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무작정 앞서 나가기도 애매합니다.

그럼에도 5년은 정말 긴 시간입니다. 앞으로 대북 접촉의 일선에서 뛸 ‘선수’들에게 옥류관은 참으로 많이 오르내리는 이름이 될 것 같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옥류관 냉면을 먹는 장면을 볼 수 있을까요?

#북한#이재명#남북 관계#방북#평양#옥류관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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