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자 김재규(전 중앙정보부장) 피고인이 육군본부 계엄 보통군법회의(재판장 김영선 중장)에서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포승에 묶여 걸어오며 웃고 있다. 이날 김재규, 김계원,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등 7명은 내란목적살인죄가 적용돼 사형을 선고 받았다. 1979.12.20 서울=뉴시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 고(故)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변호인단이 45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위헌적 수사·재판, 내란 목적이 없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무죄를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재권)는 16일 김 전 부장의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는 김 전 부장의 셋째 여동생 김정숙 씨가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김 씨는 “10·26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다”며 “오빠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막지 않았다면 국민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됐을 것”이라며 ”이번 재심이 한국 사법부 최악의 역사를 스스로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씨는 발언을 마친 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김 전 부장 측 변호인단은 “이 사건은 사법부의 치욕을 바로잡는 계기”라며 “피고인의 행위를 사법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지 살펴봐야 한다. 또 피고인은 일관되게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했다. 사실상 6~7개월 만에 모든 형이 집행되는 유례없는 졸속 재판이었고 변호인의 접견권·조력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 피살 이후 선포된 비상계엄은 위법하고, 이에 비상계엄을 전제로 한 보안사의 수사 역시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다. 계엄 선포 당시 민간인이었던 김 전 부장이 군 수사와 군법 재판을 받은 것 역시 위법하므로 무죄라는 취지다. 또 김 전 부장의 박 전 대통령 암살 목적은 국민 저항권행사일뿐 내란 목적이 아니라고도 했다.
변호인단은 이 과정에서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도 언급했다. 변호인단은 “윤석열이 다시 45년 전 김재규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손오공의 여의봉 같은 비상계엄의 악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1979년 사법부가 ‘이것은 비상계엄 선포 요건이 아니다’라고 명증하게 밝혔다면 그런 역사가 반복될 수 있었을지 사법부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경호실장을 살해한 혐의로 같은 해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6개월 만인 이듬해 5월 사형에 처해졌다.
유족들은 10·26 사건과 김 전 부장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며 2020년 5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해 4월부터 세 차례 심문을 열고 재심 여부를 심리한 재판부는 지난 2월 19일 김 전 부장에 대한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유족이 재심을 청구한 지 5년, 1980년 김 전 부장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뤄진 지 45년 만이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을 수사했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의 폭행·가혹행위를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기록에 의하면 수사관들이 김 전 부장을 수사하면서 수일간 구타·전기 고문 등 폭행과 가혹행위를 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는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피고인에 대해 폭행·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폭행·가혹행위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즉시 항고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5월 원심 결정에 헌법이나 법률의 위반이 없다고 판단해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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