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보좌진 갑질 의혹’으로 들여다본 국회 보좌진의 세계
‘금배지’ 등용문서 생계유지 직업… 로스쿨 출신 등 전문성 오르는 추세
“비상계엄 최전선서 활약” 자부심… 실질적 인사권 의원이 가지고 있어
한번 눈 밖에 나면 재취업 어려워… 입법-정책 설계와 정무 경험 기회
기업서 비싼 몸값에 대관 모셔가… 보좌진 갑질 예방 제도 장치 필요
국회의원의 ‘그림자’이자 정책 입안의 ‘주도자’인 국회의원 보좌진은 입법부를 구성하는 한 축이다. 비록 ‘스포트라이트’는 의원들이 독차지하지만 실제 이슈를 발굴하고 법안을 만드는 것은 보좌진의 주요 업무다. ‘금배지’라는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한 등용문이기도 했던 보좌진은 이제는 자아실현의 장을 넘어 생계유지를 위한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 부처 공무원들에겐 ‘갑(甲)’으로 불리지만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의 ‘갑질’ 논란에서 보듯 인사권자인 의원 앞에서는 한없이 을(乙)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특히 이번 논란은 오랜 기간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의원과 보좌진의 갑을 관계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갈등이 터져 나온 이상 어떠한 방식으로든 봉합하지 않으면 국회의 입법 역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미투’ 등 각종 사회운동을 통해 높아진 사회적 기준이 국회의원과 보좌진 사이에만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며 “강 후보자 논란은 ‘뉴스’가 됐지만 국회 내에서는 나 또는 동료의 일상이라는 점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과거 인식이 의원의 ‘가방 모찌’였다면 이제는 정책 전문가로서의 입지나 위상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민주당 보좌진인 A 씨는 “드라마나 언론을 통해 자주 노출되면서 보좌진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도 많이 올라간 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군인들이 국회에 들이닥쳤을 때 최전선에서 막아낸 것도 보좌진이다. 민주당의 한 보좌진은 “출퇴근길 국회 잔디광장에 새로 설치된 국회 상징석을 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은 국가공무원법상 별정직 공무원으로 분류된다.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원실별로 4급 보좌관 2명, 5급 선임비서관 2명, 6∼9급 비서관 각 1명씩 총 8명(인턴 제외)의 보좌진을 구성할 수 있다. 급수별 최대 호봉을 채워 주면서 일반 기업과 비교해도 보수가 나쁘지 않다. 4급 보좌관의 경우 연 90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 5급 선임 비서관은 약 8000만 원, 6∼9급 비서관은 약 5600만∼38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고도화된 사회 각 분야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보좌진 개인의 전문성도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보좌진도 적지 않다.
채용은 일반 공무원 채용과 달리 간소화돼 있다. 공개 채용시험이 따로 있지 않고 각 의원실에서 공고를 내 개별적으로 필요 인력을 선발한다. 알음알음 누군가의 소개로 면접과 채용이 이뤄지는 게 일반적인 것이다. 가까운 의원실에 높은 급수의 공석이 생기면 의원들이 자신의 보좌진을 직접 추천해 ‘승진 이동’을 시키는 일도 빈번하다. 반면 채용공고가 지나치게 자주 올라오는 의원실의 경우 피해야 하는 의원실로 꼽히기도 한다. 보좌관 B 씨는 “일하기 좋은 의원실의 경우 자리가 잘 나지 않을뿐더러 자리가 나더라도 추천을 통해 공고 없이 금방 채워진다”며 “게시판에 채용공고가 많이 올라오는 의원실은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희미한 公私 구분, 갑질에도 취약
보좌진은 채용만큼이나 면직도 쉬워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직군으로 꼽힌다. 4급 보좌관과 5급 선임 비서관의 임명과 면직은 국회의장이, 6급 비서관 이하는 국회 사무총장이 하도록 돼 있는 국회 별정직 공무원 인사 규정과 달리 실질적 인사권은 각 의원에게 있다. 2022년 법 개정으로 의원이 보좌진의 의사에 반해 면직을 요청하는 직권면직 시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두는 ‘면직예고제’가 시행됐지만, 보좌진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를 무력화했다는 평가가 많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2대 국회가 출범한 지난해 5월 보좌진 의원면직은 5명에서 6월 58명, 7월 83명, 8월 91명, 9월 95명으로 순차적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직권면직은 총 3명에 불과했는데, 실제 직급 변동으로 인한 면직을 제외하면 의원면직 통계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직권면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의원이 ‘밥줄’을 쥐고 있으니 갑질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선임비서관 C 씨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식사 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 의원들도 많다”며 “본인은 식사하러 나가면서 업무를 지시하고 식사를 마친 즉시 결과물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의원의 의정 활동과 개인 활동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만큼 어느 순간 공사(公私) 구분도 희미해지기 일쑤다. 의원 배우자를 위한 수행 직원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는 여야를 막론하고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의원 배우자에게 밉보여 의원실을 그만두게 됐다는 이야기들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한 보좌진 D 씨는 “예약이 어려운 고급 레스토랑도 의원 가족 기념일에 예약해야 하고, 명절에는 의원 가족의 KTX·SRT 좌석까지 특실로 예매해야 한다”며 “수행하다 보면 교통편이나 식비 지출이 많은데 경비 외에 초과된 지출을 의원이 보전해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보좌진들은 의원들의 눈치를 보며 속앓이만 할 뿐이다. 한번 의원 눈 밖에 나면 의원실을 옮기려 해도 의원들 사이의 평판 조회에 걸려 재취업도 쉽지 않은 구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보좌진 E 씨는 “여의도는 평판 조회가 제일 중요한 곳이라 의원들끼리도 ‘얘는 어떻다더라’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며 “만약에 다른 방으로 옮기려고 하더라도 전에 있던 의원실에서 한 명이라도 안 된다고 하면 채용이 안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 기업·부처엔 ‘갑’-의원엔 ‘을’
강 의원이 결국 낙마한 데는 이를 반대한 보좌진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만큼 보좌진의 위상도 그만큼 올라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을 보좌해 입법과 정책을 설계·조율할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무적 감각도 키울 수 있기에 꿈이 큰 정치 지망생들에게는 여전히 인기 높은 직종이다. 또한 경력을 쌓으면 기업에서 대관 자원으로 비싼 몸값에 모셔가기에 고용 불안정성을 상쇄하는 면도 있다.
보좌진의 위상은 국정감사 때 진가를 발휘한다. 보좌진이 마음먹기에 따라 의원 명의로 기업 오너를 국정감사장에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호출할 수도 있기에 기업 대관 관계자들은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에 대관 관계자들은 평소에도 자신의 기업을 담당하는 상임위원회를 맡은 의원실을 다니며 얼굴을 비추고 간식을 돌리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한 기업의 대관 관계자는 “국감철이면 의원실에서 언제 호출할지 몰라 늘 국회 인근에서 대기하는 게 일상”이라며 “일부 기업에선 국회 앞 오피스텔을 대기실 용도로 빌려 놓기도 한다”고 했다.
기업과 부처에는 ‘갑’일 수 있지만 의원에게는 한없이 ‘을’일 수밖에 없는 보좌진이 본래 목적인 정책과 정무 역량에 매진하려면 고용 안정성을 해치는 의원 갑질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야 모두 보좌진 다면평가를 의원 공천에 반영하고 있지만 갑질을 걸러내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국민의힘은 ‘강선우 갑질 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법안에는 사적 심부름과 사생활 침해, 야간 주말 호출 등 직무 외 지시를 ‘부당 지시’로 규정하고, 폭언·모욕·무시 및 부당한 업무 배제 등의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명문화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민주당 박상혁 수석대변인도 강 후보자 자진 사퇴 후 “보좌진과 대화하면서 처우 개선 등 필요한 조치들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
국회 보좌관인 F 씨는 “의원이 보좌진의 밥줄을 쥐고 있다면 결국 의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공천권”이라며 “국회라는 공간의 구조적 문제도 문제이지만 특정 개인의 일탈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조치해서 본보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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