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통상협의를 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2025.7.30/뉴스1
미국과 무역협상을 현장에서 이끈 한국 정부 협상단이 마지막까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될 지 몰랐다고 밝혔다. 협상단은 가상의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각자 역할을 나눠 ‘모의고사 치르듯’ 면담을 준비했다고도 말했다.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막기 위해 광우병 사태 때 한국에서 발생했던 시위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 “서로 트럼프 역할 맡아 역할 플레이”
협상단을 이끈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1일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개최한 특파원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 관련 “이게 진짜 오늘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질지 알 수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면담 계획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이게 이제 현실화하는구나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백악관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이 확정된 직후 상황에 대해 “저희가 모의고사 비슷하게 서로 트럼프 대통령 역할(을 하는) 롤 플레이를 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처럼 말도 하고,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답할지 저희 나름대로 굉장히 많은 시나리오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떻게 답하면 좋은지 조언을 구했다”면서 “복잡하게 설명하면 안 된다. 가급적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트럼프 대통령이 훌륭한 분이라고 언급한다든지의 다양한 조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협상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달인이라고 느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광우병 사태 때 시위 사진 보여줘”
협상단은 이날 미국의 농축산물 시장 개방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시위 사진을 보여준 사실도 밝혔다. 김 장관은 “저희가 지난번 광우병 사태 때 있었던 (시위 인원이) 100만명 이상 된 사진이 있지 않나. 그 사진을 준비해 미국에 보여줬다”며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준비했는데 그런 게 우리 한국 상황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여 본부장도 “미국 측의 농축산물 추가 개방 요구는 굉장히 거셌다”며 “2주 전인가 한국에서 농산물 개방 이슈가 본격적으로 언론화됐는데 미국도 한국에서 실제 일어나는 상황을 보면서 아마도 한국의 민감성을 현실로 인지하게 된 계기가 됐고 그게 도움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미 투자 규모인 3500억 달러가 우리 정부의 최종안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냥 오케이하며 사인해주지는 않은 부분이 있다. 그게 왔다 갔다 하면서 금액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과의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기로 투자액을 변경했듯 이번에도 그런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펜으로 수정하고 이런 거는 없었다”고 했다.
● “美상무장관 설득이 협상의 전기”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업 투자를 재촉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구 장관은 “오늘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업 투자를 빨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특히 협상단이 미국의 조선업 부흥 수요에 대비해 다양한 준비를 한 일화도 공개됐다. 김 장관은 “미국이 조선에 대해 수요가 있다는 것은 출발 전에 인지하고 있었고, 저희가 미국에 올 때 가로세로 1미터 정도의 큰 패널을 특별하게 제작해서 준비했다”고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협상이 주요 지점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 장관은 “첫 미팅 때 (우리의 조선업 투자 내용을) 미국 상무부 장관이 굉장히 높이 평가했다”며 “상무장관과 첫날 미팅하고 나서 내용을 구체화하면 좋겠다고 해서 뉴욕으로 갔다”고 전했다.
이어 “뉴욕에서 협상을 하다가 상무장관이 스코틀랜드로 가게 되는 일정이 생겨 미국 측에 제안해 스코틀랜드로 (우리가) 가서 계속 협상하면 좋겠다고 했고, 상무장관이 흔쾌히 시간 을 내줘 협상을 이어가면서 MASGA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코틀랜드에서 있었던 (협상) 내용이 굉장히 컸고 세상일이라는 게 지성이면 감천인데 스코틀랜드에서 두차례 정도 협상했다. 스코틀랜드 일정에서 협상의 어떤 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여 본부장도 “상무장관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 했다고 생각한다”며 “사실 본격적으로 우리나라도 딜을 시작한 그런 시점은 상무장관이 일본 타결 이후 그렇게 연락이 오면서 그때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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