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4일 대북 확성기 철거에 착수한 사실을 발표하며 북한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우리 정부의 선제적인 조치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앞서 6월 11일 약 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데 이어 이번에도 우리 정부가 먼저 대북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 김여정 ‘선긋기’에도 남북 신뢰 회복 조치 계속
국방부 제공국방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과 사전 협의는 없었다”며 “지난 6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한 후 후속 조치 차원에서 국방부에서 관련 논의가 있었다. 관련 부서와 협의도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번 확성기 철거 조치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행동을 일관되게 취해 나간다는 이재명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달 28일 우리 정부가 취한 대북 유화 조처에 찬물을 끼얹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이튿날 “평화적 분위기 속에서 남북한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담화 내용과 무관하게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조치를 이어나갈 것임을 시사했한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내용을 떠나 김 부부장이 현 정부 집권 이후 처음으로 직접 담화를 내며 반응한 점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며 “담화 내용과 수위도 전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던 것에 비하면 한층 누그러든 만큼 우리 정부가 진정성 있는 조치를 계속 보여주면 북한도 언젠가 변화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방부 제공국방부는 전방 20여 곳에 설치된 고정식 대북 확성기 방송 스피커 등 시설물 철거에 착수했다. 차량 형태의 이동식 방송 시설물 10여 개의 경우 6월 방송 중지 조치 이전부터 가동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고정식 시설물 철거를 이번 주 내에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 “‘적국’ 선포한 北, 호응 가능성 낮아”
국방부가 4일 오전 10시 확성기 방송 철거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렸지만 북한은 아직 대남 소음 방송 시설물을 철거할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도 북한의 대남 방송 시설 철거 동향과 관련해 “특별한 동향은 파악된 바 없다”면서도 “(대북 확성기 철거 조치는) 한반도 평화를 기획할 수 있는 구조적인 기초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 정책적 방향으로 가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올 6월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자 북한도 약 10시간 만에 대남 소음 방송을 중단했지만 이번에는 북한이 화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 인식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천명한 데다 북한이 반발하는 한미연합훈련이 18일부터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 확성기 방송 중지, 국가정보원 대북 방송 중단, 북한 개별 관광 검토 등 이재명 정부가 집권 직후부터 남북 관계 복원 조치를 속속 내놓고 있음에도 대남 소음 방송 중단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제공일각에선 현 정부의 양보가 과도하고 명분도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8년 5월 대북 확성기 철거는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판문점 선언’ 중 ‘확성기 철폐’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였던 만큼 명분이 분명했다는 것이다. 철거 작업 역시 남북이 동시에 진행하는 등 상호주의 원칙도 지켜졌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이미 2023년 11월 전원회의에서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선포했다. 우리 조치에 호응하려면 김 위원장이 나서 선포한 이 노선 자체를 철회하기 위한 당대회나 전원회의부터 열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겠느냐”며 “지금은 우리가 어떤 추가 조치를 해도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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