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외교에 자신감 붙었다…직접 ‘유엔’ 거론하며 보폭 넓힌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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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정상회담서 “유엔 등 다자 계기에 공동·근본 이익 보호할 것” 발언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 업고 활동량 늘릴 가능성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중국의 전승절(중국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행사를 계기로 다자외교 무대 진출의 폭을 넓힐 가능성이 5일 제기된다. 직접 ‘유엔’을 언급하면서 다자외교 틀 내에서 우방국과의 관계를 다지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다.

김 총비서는 전날인 4일 진행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공정한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유엔 등 다자 계기에서 양측의 공동 및 근본 이익을 잘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비서가 직접 유엔을 ‘외교의 장’으로 삼겠다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그간 북한은 유엔을 체제의 정당성을 인정받거나 각국의 공세적 외교를 방어하는 수준에서만 활용해 왔는데, 이제 기조를 180도 바꾸겠다는 취지로도 읽힌다.

다자외교 통해 ‘다극체제’ 구상 본격화…‘남북 두 국가’ 기조도 심화 예상

김 총비서가 ‘유엔 등 다자 계기’에서 북중 간 공동·근본 이익을 보호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앞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등과 연대해 유엔을 무대로 미국의 ‘일극체제’에 균열을 내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러 밀착을 강화하면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를 다극체제로 바꾸는 것’을 중요한 목표라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번 전승절 열병식에서 시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망루에 선 김 총비서가 앞으로 주도적으로 다자외교를 활용해 미국의 힘을 빼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힌 셈이다.

최고지도자의 직접 언급이 있었다는 점에서 유엔에서의 북한의 행보는 당장 이달 말 열리는 유엔총회 때부터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대북제재를 담당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중국, 러시아를 우군으로 삼아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활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유엔은 미국의 주도로 한미일이 밀착해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외교의 장으로 활용돼 왔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매번 미국 주도의 대북 조치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체면’을 지키려는 중국과 우크라전 이후 ‘막 나갔던’ 러시아의 입장 차이로 3국이 공통된 입장을 모으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이번 북중 정상의 합의는 최근 몇 년 사이 서로 달랐던 3국의 주파수가 하나로 모였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앞으로 유엔에서 중국이 더욱 전면에 나서 러시아와 북한을 이끄는 방식의 활동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김 총비서가 유엔을 언급하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공정한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한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한국을 공식적으로 ‘나라 대 나라’로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기구인 유엔 무대를 활용해 ‘남북 두 국가’ 기조를 고착화 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이에 대해 “중국은 북한이 자국의 실정에 맞는 발전 경로를 걷는 것을 변함없이 지지한다”라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북한의 방향성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당장 중국이 북한의 ‘남북 두 국가’ 방침을 꺾을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두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줄 소지가 크다.

한편으론 김 총비서가 ‘제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반도 문제를 언급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미국과 서방 중심의 대북제재 구도를 깨기 위한 중국의 대응을 더욱 강하게 끌어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유엔 등 다자외교 무대에서 미국의 대중국 압박, 군사적 위협에 대한 북한과 러시아의 지지를 이끌어 내며 미국을 상대로 한 대응 카드를 마련한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당 총비서가 지난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진행했다고 5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당 총비서가 지난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진행했다고 5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평양 노동신문=뉴스1)
‘비핵화’ 문제도 사라져…북미 대화 재개 시간 걸린다

북한과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는 아예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공개한 회담 결과문이나 북한의 노동신문 보도에서 모두 비핵화 관련 언급이 등장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른바 ‘한반도 3원칙’에 △한반도 평화와 안정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자주적 해결을 명시하고 있다. 이번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적극적 외교를 상호 합의하면서도 비핵화가 빠진 것을 두고 중국이 북한을 배려해 3원칙을 언급하지 않았거나, 3원칙이 아예 수정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한미가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 북한의 비핵화를 공식 입장으로 고수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한미의 ‘대북 제스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북한이 중국 중심의 ‘일극체제 해체’의 트랙에서 벗어나기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북한의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 총비서를 만나고 싶다고 한 것에 선을 그은 것일 수도 있다. APEC에는 시 주석도 참석할 예정이기 때문에, 북한이 개입해 미국과 접촉할 경우 중국의 체면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핵화 언급이 빠진 것이 “중국이 암묵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로 용인했다는 뜻”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것이 실제라면 향후 중국·북한·러시아의 대미 ‘핵 공동전선’이 수립될 가능성이 크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중국이 암묵적으로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한 것으로, 결국 핵 보유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짚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3원칙’을 바꿔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 정당성을 지지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라면서 “중국은 북한에 핵 보유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선물을 하면서도 아직 남북의 적대적 두 국가 기조에 입장 확정을 보류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해석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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