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보유 인정했는데 트럼프 관심 못 받아…내실 떨어진 실용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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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유엔총회 계기 뉴욕·서울서 ‘北 핵보유·역량’ 집중 부각
미국의 ‘대북 접근’ 추동했으나 성과 없이 유엔총회 외교 마무리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진행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진행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계기로 정부는 북한의 핵 능력 개발의 ‘중단’을 추동하기 위한 전면적인 외교를 진행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가 대북 외교의 진전을 위해 가장 중시하는 ‘미국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개최한 ‘대한민국 투자 서밋’ 행사에 참석해 지난 8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를 제안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 수사’가 아닌 진심으로 한 발언이라며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핵무기를 충분히 확보한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한 셈이다.

이와 함께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만 남겨둔 상황임을 언급했고 “이대로 방치하면 15~20개 정도 핵폭탄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수출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함께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이 대통령은 덧붙였다.

이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언급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서둘러 북핵 및 한반도 정세를 바꾸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정’하고 있는 북한의 핵보유를 한국도 인정한다는 뉘앙스를 주되,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인 ICBM이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들로 확산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한 취지로 해석된다.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와 별개로 정책적으로 이를 인정하는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활동폭을 넓힐 수 있는 빌미가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부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밝히지 않았던 양국 정상의 대화 내용을, 그것도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까지 이 대통령이 직접 공개하는 ‘외교적 결례’를 감수한 것은 이번 유엔총회에서의 정부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분기점’을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플루토늄 전용이 가능한 고농축우라늄(HEU)을 2000㎏가량 보유하고 있다며, 북핵 능력 개발의 ‘중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통상 핵무기 1기를 만드는 데 HEU 20㎏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엔에서의 대북 외교, 북핵 외교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기조연설에서 57분을 쓰면서도 단 한 번도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문제 등 미국이 관여하는 대부분의 국제 현안을 언급했지만 북한이 빠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참석한 4번의 유엔총회와 4번의 기조연설 중 3번이나 북한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에 이번에 보인 모습을 두고 그가 북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한편으론 관세 후속 협상의 파장으로 인해 한미 정상의 ‘조우’나 약식 회담 혹은 대면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북 외교의 추동력을 살릴 기회를 날린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145개국의 정상이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 주최 만찬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미 싱크탱크 및 외교안보 오피니언 리더들과 별도로 만찬 자리를 가졌다.

외교가에서는 정부의 섬세한 접근법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과 사전 소통 없이 기대를 부풀린 상태에서 유엔총회에 참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다.

반면 북한은 이달 초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중국 ‘전승절’ 전격 참석으로, 중국을 바짝 끌어당기는 모양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27~30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하며 시 주석의 연내 방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데, 국가주석 직에 오른 후 방북보다 방한을 먼저한 것이었다. 그는 5년 뒤인 2019년 6월에야 북한을 처음 방문했고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마음의 짐’이 있을 수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전문가는 “북중 양국은 당 차원의 교류를 더욱 중시하는 측면이 있다. 다음달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에 맞춰 시 주석의 방북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시 주석이 못가면 리창 총리라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은 현재 대미 외교 사안으로 중국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상황과 대비되게 북중 밀착은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시 주석의 방북이 북한 당 창건일 즈음에 실제 이뤄질 경우, 10월 3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무대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중국 전승절 당시 북중러 정상이 천안루 망루에 오르고, 연이어 조명되는 북중 밀착은 APEC 무대가 ‘화합·협력’ 보다는 ‘신냉전’ 요인이 부각될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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