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범죄 피해자에게 묻다]
사건 처리기간 평균 55.6일→63.8일
사이버 사기범죄는 90.2일→112.7일
수사 완결성 떨어져 피해자 발 동동
2021년 여름 전남 화순군의 한 복지시설에서 온몸에 멍과 상처가 난 발달장애 아동 김윤호 군(당시 18세)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당시 김 군의 유족은 경찰에 학대 흔적을 제시하며 복지시설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요구했다. 관계자들은 “김 군이 자해한 흔적”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5개월가량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가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폐쇄회로(CC)TV 등 물증은커녕 목격자 진술조차 확보하지 못했고 부검 결과도 ‘사인 미상’으로 나왔다는 이유였다.
유족들은 반발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김 군이 사망한 해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2021년이었다. 이전만 해도 1차 수사기관 결과가 미진하면 2차 수사기관의 직접 보완수사가 가능했지만 김 군 사건은 불가능했다. 결국 유족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아이가 이렇게 심하게 자해한 적은 없었다”고 항변했고, 이의신청 끝에 보완수사 요구를 이끌어냈지만 바뀐 건 없었다. 검찰로 넘어간 뒤에도 담당 검사와 수사관도 서너 차례 바뀌면서 또다시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를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미 수년이 지난 뒤라 상황을 뒤집을 증거를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김 군이 사망한 지 4년이 지나도록 이 사건은 광주지검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1차 수사기관과 2차 수사기관의 역할이 재조정되면서 장기 미제사건은 매년 늘고 있다. 경찰에 사건이 쌓여가는 바람에 수사 완결성이 떨어져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애먼 피해자들만 발을 동동 구르게 된 것이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사건 처리에 6개월을 넘긴 ‘장기미제사건’은 2020년 10만6316건에서 2023년 16만897건으로 51%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사건 중에서 미제 사건 비율은 2020년 6.3%였지만 2023년 11.7%로 약 2배 늘어났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에는 검찰이 수사지휘한 사건 중 경찰 단계에서 평균 3개월 이상이 걸렸던 사건들은 2020년 상반기 28.5%, 하반기 16.7%였다. 하지만 2021년부터 보완수사 요구로 전환된 후엔 2021년 상반기 43.5%, 하반기 47.1%로 대폭 늘었다. 사건 1건당 처리 기간은 2020년 평균 55.6일이었지만 2023년 63.8일로 14.7% 증가했다. 특히 국민의 재산과 관련된 사이버 사기 범죄 사건은 2020년 90.2일에서 2023년 상반기 112.7일로 대폭 늘었다. 이 밖에도 같은 기간 경제 범죄는 69.1일에서 85.6일로, 지능형 범죄는 89.4일에서 104.3일로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경찰개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처리할 사건 수가 줄었음에도 수사에 대한 책임감이 낮아졌고, 경찰은 수사가 부실해지는 등 수사 완결성이 떨어졌다”며 “이미 사건이 많이 적체돼 있던 상황에서 바뀐 체계를 극복해내지 못했고 형사사법체계의 조직적 문제가 고스란히 국민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번 검찰개혁은 제대로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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