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학부모들이 자녀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다. 전날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초등학생을 유괴하려던 20대 남성 3명이 붙잡히면서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귀엽다. 집에 데려다주겠다.”
지난달 28일 오후 3시 반경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왕복 2차로. 회색 쏘렌토에 탄 20대 남성들이 지나가던 저학년 남자아이 2명에게 차창 너머로 건넨 말이다. 아이들이 놀란 듯 뒷걸음치자 차량이 따라서 후진했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 듯 황급히 뛰어서 자리를 벗어났다. 5일 경찰이 기자들에게 공개한, 유괴 시도 당시 방범용 폐쇄회로(CC)TV에 담긴 모습이다. 유괴 미수범 일당 3명은 “아이들이 놀라는 모습이 재밌어 장난삼아 그랬다”고 경찰에 주장했지만, 이들은 앞서 두 차례나 같은 행동을 한 상황이었다.
● 피해 아동 뒷걸음치자 따라서 후진
이날 서울서부지법은 이들 일당 3명 중 범행을 주도한 2명에 대해 미성년자 유인 미수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다. 범행을 만류한 1명은 구속 대상에서 제외됐다. 피의자들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법정으로 향하며 “실제로 유괴할 의도가 있었나” “왜 세 번이나 범행을 반복했나” 등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달 2일 처음 신고가 접수됐을 땐 허위라고 봤으나 추가 신고로 재수사에 착수해 실제 범행을 확인했다. 이후 이들 일당은 조사에서 “실제로 차에 태우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세 차례나 유괴를 시도한 데다 도망치려는 아이들을 따라 차량을 후진시킨 모습이 CCTV에 포착되는 등 계획 범행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정확한 범행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이들의 휴대전화와 차량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등을 압수해 포렌식을 진행 중이다.
소식을 접한 학부모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임모 씨(32)는 “집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라 불안한 나머지 실제 장소를 다른 학부모들과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미성년자 약취·유인 범죄는 2020년 210건에서 2021년 240건, 2022년 276건, 2023년 342건, 지난해 316건 등이다.
● 강제추행 전과자가 유괴 시도해도 집행유예
현행법상 미성년자를 약취하거나 유인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판결은 가벼운 경우가 많다. 2023년 2월 경기 의정부시에서는 술에 취한 남성이 “아이가 예쁘다”며 8세 여아 소매를 잡아끌다 보호자의 제지로 미수에 그쳤다. 법원은 같은 해 10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남성은 이미 아동 강제추행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었지만 재판부는 “사건 당시 보호자가 동행해 약취 가능성이 작았고, (피고인이) 사회적 유대 관계가 있다”며 형을 낮춰줬다.
반면 미국은 연방법과 주법 모두 미성년자 납치와 납치 미수 모두 중범죄로 취급해 최고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한 60대 남성이 길 가던 아동을 엄마 품에서 빼앗으려다 미수에 그쳤고, 납치·납치 미수에 대해 30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는 주법에 따라 올 7월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월 이탈리아에서는 어머니 손을 잡고 있던 5세 아동을 데려가려 한 30대 남성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한국보다 훨씬 강력한 처벌이 실제로 집행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아동 대상 범죄에 대한 본보기 차원의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일부 피의자가 범행을 일종의 놀이로 여기거나 또래 집단 내에서 과시하기 위한 심리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며 “실제 판례에서 아동 대상 범죄 전반의 형량이 낮게 선고되다 보니 범행 억제력이 약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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