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필수의료 사망사고에 ‘형사처벌 면제’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6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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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 “의사 특혜” 반발

2024.7.24 뉴스1
정부가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유족이 동의하면 ‘반의사 불벌’ 특례를 적용해 의료진을 형사처벌 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한다. 필수의료에서 중과실이 없는 의료사고는 기소를 자제하도록 해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6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이런 내용이 담긴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을 공개했다. 소송과 배상 부담 때문에 적극적 진료를 꺼리고,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된다는 의료계 목소리를 반영해 사법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환자·시민단체는 “의사에게 지나친 특혜를 준다”고 반발하고 있어 제도 도입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의료진 과실 따져 기소 결정

정부는 환자의 상해 정도가 아니라 의료진의 과실 경중에 따라 법적 책임을 묻도록 형사 기소 체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의사, 환자단체, 법조계 등으로 구성되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심의위)를 신설해 고소·고발 후 최대 150일 안에 필수의료 및 중과실 여부를 판단하고, 중과실이 아닐 경우 수사 당국에 기소 자제를 권고하도록 할 방침이다.

면책 대상이 되는 필수의료와 중대 과실 유형과 기준은 법령에 규정하되, 심의위에서 개별 사안별로 판단을 내리도록 했다. 정부는 △수술 부위 착오 △수혈 및 투약 오류 △일회용 의료기구 재사용 등을 중대 과실의 예로 들었다. 미용·성형 등 비필수 분야는 단순 과실이라도 면책되지 않는다.

가장 논란이 되는 건 환자와 의료진이 합의했을 때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반의사 불벌’ 특례를 어디까지 적용하느냐다. 정부는 사망사고가 나더라도 필수의료에 한해 유족 전원이 동의할 경우 반의사 불벌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족과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사고 당시의 긴급성, 의료진의 구명 활동 등을 고려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에 대해 환자단체들은 “면책 범위가 너무 넓다”며 반발하고 있다.

● 배상 규모 늘리고, 환자 대변인제 신설

신속한 의료사고 분쟁 해결을 위해 환자 피해 보상도 강화된다.

우선 의료기관 개설자를 대상으로 의료사고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한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운영하는 의료배상공제조합에는 현재 의원의 33%, 병원·종합병원의 36% 정도만 가입한 상태다. 진료과목별로도 보험료율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차등액에 상한을 둬 격차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중증·응급 등 생명과 직결된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에선 5억 원 이상의 고액 배상이 가능하도록 특별배상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1000만 원 이하 소액 사건은 30일 내 신속 배상이 이뤄지도록 절차를 개선한다.

정부의 의료사고 배상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는 올 7월부터 불가항력적인 분만 사고의 국가 보상 한도를 300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올리기로 했는데, 이를 중증 응급, 중증 소아 등 다른 고위험 분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의학적, 법적 지식이 부족한 환자를 돕기 위한 ‘환자 대변인제’도 신설된다. 사망이나 중상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분쟁 조정 신청서나 의견서 등을 작성하는 과정을 돕고 분쟁 조정 과정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 환자단체 “의사만 특혜” 반발

이날 정부안이 공개되자 환자·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대다수 의료 과실이 단순 과실로 분류돼 불기소가 남발되고, 환자 권리가 크게 침해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장은 “환자의 의료사고 (과실) 입증 책임을 없애주는 게 먼저”라며 “의사의 형사처벌에 특례를 준다고 환자의 안전이 더 보호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대책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황만성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 과실을 판단하는 심의위의 결정이 얼마나 효력을 가질지, 수사기관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충분하고 신속한 보상을 위해선 재원 확보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강희경 전 서울대 의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은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남아 있길 원한다면 단순 과실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의료사고는 형법 체계가 아닌 면허 관리 등의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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