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남자친구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최소 181명에 달한다는 조사가 나왔다.
‘세계 여성의 날’(8일)을 맞아 한국여성의전화가 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81명,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374명이었다.
자녀, 부모, 친구 등 주변인 피해를 포함하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빠졌던 피해자 수는 최소 65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약 15.8시간마다 여성 1명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해있으며, 주변인 피해까지 더하면 13.5시간에 1명이 피해를 입은 꼴이다. 이 통계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어서 보도되지 않는 사건을 포함하면 피해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총 650명의 피해자 중 연령대를 확인할 수 있는 346명을 분석했을 때, 피해자의 연령대는 20대가 21.97%(76명)로 가장 많았고, 30대 19.36%(67명), 40대 18.5%(64명), 50대 17.05%(59명), 60대 11.85%(41명) 순이었다. 70대 이상은 5.78%(20명), 10대는 5.49%(19명)였다.
가해자들은 주변인 뿐 아니라 반려동물에게도 피해를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한 주변인 피해는 전체 51건 중 전·현 배우자·애인 피해가 15명(29.4%)으로 가장 많았고, 동료·친구 등 지인(19.6%)과 부모‧자매‧형제 등 친인척(17.6%)이 뒤를 이었으며, 반려동물 피해도 11.7%를 차지했다.
배우자 관계에서 발생한 주변인 피해는 자녀 피해가 17명(44.7%)으로 가장 많았고, 전/현 배우자·애인 피해가 8건(21.1%)으로 그 뒤를 이었으며, 부모‧자매‧형제 등 친인척이 13.2%를 차지했다.
언론에 보도된 가해자의 범행 이유는 “시킨 일을 하지 않아서”, “음식이 맛이 없어서”, “늦게 귀가해서”, “전화를 받지 않아서”, “문을 늦게 열어줘서”, “잔소리를 해서” 등 터무니없는 이유가 많았다. 특히 ‘홧김에,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한 사건이 155건으로 23.85%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 ‘싸움’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피해자를 소유물로 보는 가해자의 인식이 있는 권력관계에서의 폭력임이 드러난다.
이 외에도 가해자들은 ‘이혼·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만남을 거부해서’ 136명(20.92%),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 83명(12.77%), ‘자신을 무시해서’ 28명(4.31%) 등의 순으로 범행의 이유를 주장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통제를 벗어나거나, 벗어나려는 시도를 할 때 피해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 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비율은 낮았다. 가정폭력 피해자 중 단 0.8%만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피해자(주변인 포함) 650명 중 114명(17.5%)은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받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당했다.
2024년 1월부터 8월까지 가정폭력으로 인해 경찰이 임시 조치를 신청한 건수는 5790건이나 법원이 이를 결정한 것은 4647건으로, 약 80%만 승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승인된 대부분의 임시 조치는 격리, 접근금지 등이고, 가장 강력한 보호조치인 임시 조치 5호 ‘가해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는 경찰 신청 건수도 전체의 6%에 불과한 346건, 이 중 법원 승인 건수는 전체 승인 비율 80%에 한참 못 미치는 약 55%인 191건이었다.
피해자 신변보호조치를 담당하는 전담 인력이 피해 발생과 필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계속해서 높아졌지만, 2024년 역시 2023년과 동일한 259명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9년부터 2024년까지 16년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피해자는 최소 1560명이었다. 살인미수 등까지 포함하면 3613명, 피해자의 주변인까지 포함하면 4423명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16년간 최소 1.62일에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와 관련 공식 통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중히 삼고,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여성 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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