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학생 한 팀 이뤄 역지사지 토론… 이해 깊어져 민주적 합의 도출

  • 동아일보

코멘트

[공존형 토론으로 키우는 시민] 〈2〉 교사 참여로 토론의 질 향상
서울시교육청 주최 직무연수 진행… 교사-중고교생 함께 토론에 참여
SNS 활발해지며 확증 편향 우려… 공존형 토론 통해 정보 판단력 강화
9월 교육감협의회 안건 상정 추진… 공존형 토론 전국적으로 확대 예정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에서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인공지능(AI) 시대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 심화교재 활용 직무연수’ 현장. 서울시교육청 제공
“완전한 가치관이 정착되지 않은 나이대의 이른 정치 참여는 교육활동에 방해가 된다.”

“민주시민 의식과 시민 불복종 등 삶과 연계된 교육 본연의 목적에 정치 참여는 꼭 필요하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에선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인공지능(AI) 시대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 심화교재 활용 직무연수’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중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모여 ‘학생의 정치 참여를 금지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시교육청은 AI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보급으로 확증 편향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학생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찾는 능력을 키우고 찬반 양측의 민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찬성과 반대 입장을 두루 가정해 토론에 참여하는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을 추진 중이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은 주제와 논거를 정하고 누가 더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펼치는지를 평가했던 기존 토론수업과 달리 찬반 양측이 서로 이해하고 민주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둔다. 찬반 양측의 1차 토론이 끝나면 2차 토론에서는 서로의 진영을 바꿔 토론을 진행한다. 상반되는 양측의 입장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서로 이해하고 역지사지를 실천한다는 취지다.

● 찬반 입장 바꿔 다양한 의견 수렴

대부분의 토론수업에서 교사는 토론수업을 주재하고, 학생들은 팀을 나눠 토론의 주체가 된다. 하지만 이날 토론수업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한 팀을 이뤄 주제에 대한 논거를 세우고 동등한 토론자로 참여했다.

교사가 토론 참여자로 참가하자 토론의 질도 높아졌다. 특히 학생의 정치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토론 참가자로 참여한 한 교사는 쟁점 사안인 ‘정치 참여 적정 나이대’와 관련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우 16세부터 선거권을 갖는다. 이번 독일 총선 결과 극우 정당인 AfD의 지지율이 지난 총선 대비 11% 올랐다. 이들 정당에 대한 16∼17세 유권자의 지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며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했다.

토론 시작 30분 만에 찬성과 반대 측은 서로 입장을 바꿨다. 찬성과 반대 두 입장을 모두 경험하며 ‘역지사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은 1차 토론에서 나오지 않은 논거들로 다시 토론을 진행했다. 1차 토론 때 반대 진영이었던 한 학생은 찬성 진영에서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맹신한 학생들이 ‘꼭 누가 돼야 한다’며 각 반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선전하는 모습을 봤다”며 실제 경험을 토대로 SNS에 넘치는 가짜 뉴스 등을 걸러내는 데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건 무리라고 주장했다. 찬반 양측이 바뀌다 보니 1차 토론 당시 나왔던 기존의 논거를 재활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주제에 관련된 더 다양한 정보와 논거들이 등장했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에 참여한 명덕고 3학년 박서진 군(18)이 토론 주제에 대한 찬반 양측의 합의 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2차 토론이 끝난 뒤에는 민주적 합의 과정이 진행됐다. 이날 토론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고등학생의 정치 참여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에 합의를 이뤘다. 다만 교내에서의 정치 활동 방법 및 정치 참여를 위한 성숙도의 기준에 대해서는 치열한 논쟁 끝에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학 입시 일변도가 아닌 고등학생의 정치적 판단력을 기를 수 있는 수업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도출됐다.

토론에 참가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평가도 좋았다. 찬반 양측의 논거를 준비해야 하니 주제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는 평이었다. 서울국제고 3학년 정수안 양은 “선생님이 함께 토론에 참여하니 기사나 참고자료가 풍부해 토론의 질이 올라갔다. 역지사지 토론 방식답게 토론 전 자료 조사를 할 때도 주장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었고 항상 다른 쪽 생각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심새미 해누리중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학교 생활 속에서 쇼츠나 유튜브를 본 뒤 콘텐츠에 담긴 내용을 언급하며 자기 생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진짜 사실에 대한 근거를 찾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한 시기이기에 이런 토론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 전국으로

서울시교육청은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 수업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인사말에서 “올 9월에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안건으로 상정을 추진해 전국으로 확산해 나가려고 한다”며 “7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정치학회 학술포럼에서도 서울시교육청의 토론 세션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경기도교육청과 함께 미래세대 열린 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원칙 수립과 학교현장 적용을 위한 실천적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공표했다. 서울시 교사들은 지난해 12월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 실천교사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 실천교사 선언문에는 4가지 원칙이 담겼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인간에 대한 존엄, 표현의 자유,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에 대한 존중의 법칙 △교육의 정치적 중립 준수와 강압적 주입 금지의 원칙 △논쟁성 재현의 원칙 △보편성을 기반으로 특수성을 존중하는 역지사지의 원칙이다.

이날 토론회 현장에는 경기도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참석해 토론수업을 참관하기도 했다. 홍상의 경기 과천중 교사는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으로 학생들이 나와 다른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며 “저는 역사 교사라 (토론수업을) 역사적 사건 또는 상황에 대해 상반된 입장의 세력이나 인물에 대해 역지사지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방식으로 적용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공존형 토론수업#역지사지#민주적 합의#확증 편향#교육활동#학생 의견#교사 참여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