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오토바이 운전자를 수습하기 위해 공사장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30대 오토바이 운전자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거대한 싱크홀(땅꺼짐)이 삼켜버린 오토바이와 그 운전자. 밤새 구조 작업이 이어졌지만, 차가운 지하 깊숙한 곳에서 실낱같은 희망은 무너졌다.
“살아있기를 바랐는데…” 구조 소식을 기다리던 주민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싱크홀 인근 주민들이 공원에 산책을 나왔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25일 오전 기자가 찾아간 명일동의 대형 싱크홀 주변에는 주민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모여있었다. 밤새 구조 작업이 진행됐지만, 16시간이 넘도록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오전 11시 22분경 소방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방대원들은 들것을 들고 싱크홀에서 약 50m 떨어진 공사장 가림막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오토바이 운전자 박 모 씨(33)가 지하 50m 지점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사고 당시 헬멧과 바이크 장화를 착용한 채였다.
소방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공사장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박 씨는 전날 저녁 6시 29분경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싱크홀로 추락했다. 최초 목격자가 달려왔을 때, 박 씨는 이미 토사에 매몰돼 보이지 않았다. 오토바이만 조금 보일 뿐이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소방은 자정을 넘겨 오전 1시 37분경 싱크홀 기준 40m 아래서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이어 약 2시간 뒤인 오전 3시 32분경 싱크홀 20m 밑에서 일본 혼다 오토바이(110cc)를 확인하고 인양했다.
결국 사고 17시간 만에 박 씨는 싱크홀 중심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싱크홀 하부 지하철 9호선 공사장 터널 구간 바닥 부근이다. 소방은 박 씨를 발견한 지 약 1시간 만인 오후 12시36분경 시신 수습을 완료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이번 사고로 주변은 공포가 스며든 거리가 됐다. 주민 박모 씨(67·남)는 “이런 건 뉴스로만 봤는데 실제로 내 옆에서 일어나다니 믿기지 않는다. 늘 다니던 길이다.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한테도 닥칠 수 있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쿵 하는 소리에 나가보니…구멍 점점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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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주유소 관계자가 기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싱크홀 바로 옆에는 주유소가 있다. 주유소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싱크홀은 전날 저녁 6시 30분경 처음 발생한 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커졌다.
주유소 운영자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가 ‘쿵’하는 소리에 바로 뛰어나가 보니 도로가 꺼지고 차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오토바이는 이미 토사 안으로 빨려 들어가 형태가 거의 안 보였다”고 증언했다.
이어 “약 10분 후에 제가 전화를 받고 달려와 보니 처음엔 차선이 4개 정도 면적이 함몰돼 있었다. 얼마 후 주변 인도와 나무, 전신주까지 빨려 들어가면서 주유소 전기까지 끊겼다. 밤에 잠을 못 잤다. 나올 때마다 구멍이 커져 있었다”고 말했다.
싱크홀 인근 주유소가 수 톤에 달하는 기름을 퍼내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혹시 모를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수 톤에 달하는 주유소 기름을 모두 퍼내는 작업이 진행됐다.
싱크홀이 점차 커지면서 인근 꽃집 입구 계단까지 무너졌다. 꽃집 사장은 너무 놀라서 가게 문을 닫고 잠시 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진정이 되지 않아 몸이 떨려서 그냥 누워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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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쩍쩍!’ 이미 조짐…“열흘에 10mm씩 벌어져”
싱크홀 주변 주민들이 이전에 산발 적으로 발생한 도로 구멍 보수공사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주민들은 사고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부터 인근에 산발적으로 작은 싱크홀이 생겨나 덧방 공사를 한 곳이 많다고 말했다.
주유소 관계자는 “1월 말쯤부터 주유소 바닥이 약간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워낙 바닥이 오래됐으니 긴가민가했다. 주유소 기둥도 그렇고, 주유기 있는 바닥과 세차장 바닥이 원래 도장만 깨진 상태였는데, 2월 중순부터 열흘에 10mm씩 벌어졌다”고 밝혔다.
싱크홀 인근 건물 담장에 금이 가 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김승현 기자 tmdgus@donga.com 이어 “3월 5일쯤 구청에 민원을 넣었고, 14일 검사가 이뤄졌지만,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고가 났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부 주민들은 이번 싱크홀이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 서울세종고속도로 지하 구간 공사 등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주민 A 씨는 “4~5개월 전에도 길이 내려앉아 시멘트로 메웠다”며 집 안을 보여줬다. 그의 집 담벼락은 기울어 있었고, 바닥엔 깊은 틈이 생겨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A 씨는 “작년 2월과 3월부터 비가 오면 경사진 곳곳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예전에는 없었다. 공사 관계자에게 말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신문고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현장을 지나가던 한 주민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럴 줄 알았다. 이쪽에도 구멍 나서 땜질하고 또 저쪽에도 때우고, 다 예견된 일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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