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의 힘으로 뛰었죠”…터널 대참사 막은 홍학기 경위[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5년 4월 3일 12시 00분


코멘트
당시 서행하고 있던 화물차. 충북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블랙박스 제공
당시 서행하고 있던 화물차. 충북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블랙박스 제공
“갓길에 고장차량으로 추정되는 화물차가 비상등을 켜고 있다. 지원하겠다”

지난 1월 16일, 충북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고순대) 소속 홍학기 경위와 그의 파트너 김창승 경감은 평택제천고속도로를 순찰하던 중 산척4터널(제천방향)안 2차로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정차한 4.5t(톤) 화물차 한 대를 발견했다. 이들은 터널안의 고장차량 위치와 상황을 무전으로 보고하고 지원하려 했지만 돌연 고장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화물차가 터널을 벗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화물차는 점점 비틀거리더니 결국 오른쪽으로 치우치며 터널 외벽을 스치기 시작했다.

“저 차 뭔가 이상한데? 차 좀 잠깐 세워봐.”

금성터널을 앞두고 다른 화물차들과 비교해 저속으로 운행하면서 외벽을 두 번이나 박은 화물차를 보고, 홍 경위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와 파트너는 운전자가 원인 모를 쇼크로 인해 운전이 불가능한 상태일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 홍 경위는 순찰차에서 직접 내려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들은 화물차를 향해 정지방송을 했지만, 화물차는 이를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또 터널 안을 빠져나오자 마자 본선으로 차선을 바꾸는 등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여줬다. 홍 경위는 순찰차에서 바로 내려 화물차를 향해 뛰었다. 그가 뛰는 동안 화물차는 비틀거리면서 오른쪽 외벽과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주행을 계속했다.

평소 아마추어 축구클럽에서 활약하던 홍 경위는 빠르게 화물차로 뛰어올라 조수석 문을 두드리며 “브레이크!! 브레이크!!”라고 외쳤다. 당시 화물차 운전기사는 멍한 눈으로 창문을 두드리던 홍 경위를 봤다. 화물차는 터널을 앞두고 멈춰 섰다.

빠른 판단으로 ‘터널 참사’ 막아
당시 서행하고 있던 화물차. 충북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블랙박스 제공
당시 서행하고 있던 화물차. 충북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블랙박스 제공
경조사 휴가기간 중 인터뷰에 응한 홍 경위는 그 당시 어떤 생각도 안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다 끝났을 때 순찰차 블랙박스를 봤을 때 무모한 행동을 한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며 “이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본능적으로 화물차를 세웠다”고 회상했다.

그가 화물차에 올라탔을 때 차가 외벽을 다시 들이받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터널에서 발생할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 그는 몸을 던졌다.

홍 경위는 “금성터널은 평택제천고속도로 구간 중 가장 긴 터널로 길이가 4.5km다. 해당 터널내부에서 화물차가 전복되거나 다른 차량과 추돌해 사고와 화재가 발생한다면 화재진압도 어렵고 수습도 힘들 것”이라며 “그런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막기를 원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후 화물차 운전자를 상대로 음주 및 약물복용 여부를 확인했지만,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운전자는 당뇨병을 앓고 있었으며,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안동에 있는 공장으로 운송 업무를 나갔다고 한다.

홍 경위는 “화물차 기사가 사고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라며 “견인차를 부르겠다고 했는데 막상 부르지도 못하고 떨고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화물차 기사는 이후에도 아무것도 못 하다 도로교통공사의 도움을 받아 이동할 수 있었다. 그는 병원에서 검사 도중 큰 질환을 발견해 2주간 입원을 했다.

이후 홍 경위가 확인한 화물차는 외벽에 긁히면서 화물을 고정하던 끈이 끊어졌고, 지지 철대도 심하게 휘어 있었다.

홍 경위와 그의 파트너는 사건을 마무리한 뒤 상부에 보고했고, 관련 영상이 공개되면서 그의 활약이 알려졌다. 결국 그는 김학관 충북경찰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5년 차 베태랑 ‘고순대’ 대원
조곡터널에서 발생한 화물차 사고 현장.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조곡터널에서 발생한 화물차 사고 현장.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고순대 대원들은 관할구역의 고속도로와 도로를 순찰하며, 사고 예방 및 단속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고된 업무로 평가받는다. 홍 경위는 5년 차 베테랑 대원으로, 수많은 고속도로 사건·사고를 경험했다.

홍 경위는 이번 사고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던 사고와 비슷하다고 전했다. 그는 “조곡터널에서 최근 폐기물 화물차량 사고가 있었다. 터널 내에서 폐기물을 실은 화물차가 갓길에 서 있었는데 이를 못 본 자동차 부품 트럭이 접촉 사고를 냈고 화재까지 발생했다”며 “이 사고로 조곡터널 운행이 통제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사고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자동차 부품 트럭 운전자는 사고로 구겨진 차에서 구출됐지만 큰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홍 경위가 관련 사실을 피해자 가족에게 전했을 때 피해자 가족은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이런 일을 반복하면 PTSD(외상 후 스트레스)에 걸리지 않나’는 질문에 그는 “경찰청 마다 PTSD를 치유를 돕는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어 도움이 된다”며 “업무가 힘들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우울함보다는 오히려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무덤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해 1년 만에 다른 부서로 발령을 요청하는 대원들도 많다고 홍 경위는 전했다.

제복의 힘, 그리고 주변의 걱정
김학관 충북경찰청장으로부터 표창장 홍학기 경위.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김학관 충북경찰청장으로부터 표창장 홍학기 경위.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홍 경위는 이번 활약이 제복의 힘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경찰들은 제복을 입으면 뭔가 더 큰 책임감과 힘이 생긴다”며 “일선 지구대에서도 다툼이 생기면 제복의 힘을 빌려 조정하듯이 우리 고속도로순찰대도 제복의 힘을 빌려 일을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홍 경위의 활약에 대해 주변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고 한다. 잘한 일이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의 가족과 동료들은 걱정이 앞섰다.

그는 “같은 경찰일을 하는 아내한테도 이번 일을 바로 말하지는 않았다”며 “영상이 공개되고 주변 경찰들로부터 관련 일을 알게 되자 ‘다음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에둘러 말하더라”라고 전했다. 올해 고3이 된 장녀 또한 아내와 같은 말을 했다.

홍 경위는 “만약 이런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한다면 이번처럼 바로 움직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경찰로서의 사명감과 가족들의 걱정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도로 안전을 위해 세상에 하고픈 말
(왼쪽부터)홍학기 경위와 파트너 김창승 경감.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왼쪽부터)홍학기 경위와 파트너 김창승 경감.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홍 경위는 마지막으로 운전자들에게 전방 주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80% 이상의 사고가 전방주시 태만이다”라며 “사소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큰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이 전방주시 태만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고속도로에서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주행하는 운전자들이 많다. 장시간 카카오톡 메시지를 작성하며 운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경고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고속도로순찰대#고순대#충북경찰청#화물차#금성터널#조곡터널#PTSD#경찰청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