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대기 아기들이 작은 손으로 꾹 껴안은 매트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10년 동안 바느질로 마음을 나눈 사람들, 그 중에는 김윤주 씨가 있었다.
2016년 6월 5일, 김윤주 씨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가족들과 1박 2일 전주 여행을 떠나던 날, 그의 마음은 묘하게 뒤숭숭했다. 전날 밤, 블로그에 올린 게시글 때문이었다.
블로그 한 줄에서 시작된 바느질 봉사
(사진=봉트리살롱 제공)
‘입양아기 누빔매트 만들어주기 바느질 운동 합시다!’
제목은 평범했지만, 그 속 뜻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이 둘을 키우며 취미로 바느질을 시작한 윤주 씨는 어느덧 공방을 열고 미싱 수업을 진행할 만큼 숙련자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중 한 수강생이 물었다.
“선생님, 저 이런 아기 매트 만들 수 있을까요?”
(사진=봉트리살롱 제공) 사연을 들은 윤주 씨는 수강생과 함께 서울 동방사회복지회를 찾았다. 오후 4시, 자원봉사자가 빠져나간 시간. 울음소리로 가득한 방 안엔 낡고 젖은 매트 위에 누운 아기들이 있었다.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들은 하루 종일 매트 위에 누워 지낸다. 토한 우유, 흘린 땀에 매트는 쉽게 젖고 더러워졌다. 그러나 갈아줄 사람도, 여유도 없었다.
그날 밤, 윤주 씨는 블로그에 다시 글을 올렸다. 필요한 매트의 소재, 크기, 누비는 방식까지 상세히 안내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도 만들게요.” “집에서라도 보내볼게요.” “자신은 없지만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날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어진 ‘누빔매트 봉사’가 시작됐다.
“미싱 못해도 돼요, 핀 하나만 꽂아도 시작이에요”
(사진=봉트리살롱 제공) 이제 매달 셋째 주 수요일이면 윤주 씨의 공방은 작은 봉제 공장이 된다. 누비는 사람, 다림질하는 사람, 선 긋는 사람, 자르는 사람, 핀 꽂는 사람까지 자연스러운 분업이 이뤄진다.
“바느질 한 번도 안 해본 분도 와요. 몇 번 참여하다 보면 ‘저 미싱 배울게요!’ 하시더라고요.”
경험자에겐 2시간, 초보자에겐 3시간이 걸리는 매트 한 장. 그렇게 모인 매트는 매년 100장이 넘는다.
윤주 씨는 소재도 꼼꼼히 고른다. “얇으면 안 돼요.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하니까. 아이들 피부에 원단이 겹치면 배길 수 있어요. 그래서 밀리지 않게, 촘촘히 잘 누벼야 해요. 소재도 전부 순면으로 해요. 아기들이 얼굴을 대고 있는 거니까.”
(사진=봉트리살롱 제공) 멀리에서도 도움의 손길은 이어진다. 문을 닫게 된 공방이나 이불을 만드는 사장님들이 남는 원단을 보내주기도 한다. 또 집에서 누빔매트를 만들어 택배로 보내주는 이들도 있다.
“연말이면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 쌓이듯이 공방 앞에 택배 상자가 쌓여요. 앞다퉈서 보내주려고 택배가 몰려와서, 쌓아놓은 걸 보면 그것도 감동이죠.”
윤주 씨는 아이들이 바로 쓸 수 있게 직접 손수 빨래를 해서 보낸다. 전국에서 택배로 매트가 쏟아져 들어오면, 하나하나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빨고 정리한다. “수십 개씩 빨아 널어놓는 걸 저희 애들도 알아요. 엄마가 또 매트 빠네, 하죠.”
“유언장에도 남겼어요…누군가는 계속해주길”
(사진=봉트리살롱 제공) 윤주 씨는 매트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선물”이라고 말한다. 디자인이 모두 다르기에 아이들도 자기 매트를 기억한다.
“빨래해서 다시 깔아주면 ‘이건 내 거야!’ 하고 가져간대요. 아이들이 덮는 건 따로 있는데 애착 인형처럼 좋아한대요.”
공용이 대부분인 시설에서 매트는 아이들이 처음 갖는 ‘나만의 물건’이 되었다.
윤주 씨는 최근 유언장을 쓰며 이 봉사를 생각했다고 했다.
“바늘을 들 힘만 있어도 계속할 텐데… 내가 죽으면 누가 이어줄까 생각했어요.”
(사진=봉트리살롱 제공) 그러면서 머릿속에 한 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진심이 통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는 이 봉사를 ‘원단의 환생’이라고 불렀다. 버려질 자투리 천이 아기들의 귀한 애착 이불이 되기 때문이다.
윤주 씨는 아기들이 머무는 보호소에는 생각보다 적은 예산이 책정된다는 말을 들었다.
“일시 보호소에 있는 아기에게는 분유값이 얼마 안 나온대요. 노인정은 투표권이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아기들은 투표권이 없어서 생각보다 국가 예산이 적다는 말을 관계자에게 들었어요.”
그는 “봉사는 거창할 필요 없어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고 말했다.
(사진=봉트리살롱 제공) 그는 이 봉사를 혼자 했으면, 10년 가까이 하지 못하고 매년 100개씩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주 씨는 블로그에 매년 입양 매트를 보내달라고 글을 올리면서도 불안한 느낌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도 안 보내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윤주 씨는 마지막으로 웃으며 말했다. “저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에요. 바느질을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으니까요.”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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