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입법공백 6년째… 미허가 ‘유산 유도제’ 불법거래 기승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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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불합치에도 대체 입법 미뤄… 비과학적 낙태법 SNS 타고 번져
불법판매 약 먹고 복통-출혈 허다
“의사지도 없이 복용, 독약 먹는것”
수사기관도 죄목 적용 두고 혼란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6년이 지났지만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의료 현장에서는 낙태를 둘러싼 불법 약품 거래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일부에선 한국에서 정식 허가되지 않은 유산 유도제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암암리에 구입한 뒤 복용하다 심각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정부와 수사기관도 낙태 시술을 받은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양새다.

● 낙태약 불법 유통, 복통-출혈 부작용도

26일 산부인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한 20대 여성은 인터넷에서 음성적으로 판매하는 낙태약 ‘미프진’을 사먹고 낙태를 시도했다가 심한 복통과 출혈이 시작됐다. 병원을 찾은 여성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심각한 상황에 이를 뻔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비슷한 일로 병원을 방문하는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먹는 낙태약’으로 불리는 미프진은 1980년대 프랑스에서 개발됐다. 현재 프랑스, 중국, 미국, 스위스, 캐나다 등에서 판매 중이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필수 의약품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지 못해 유통이 허용되지 않았다. 식약처 관계자는 “임신 중지 허용 기간 등이 법률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미프진에 대한) 허가를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온라인 등에선 미프진을 몰래 거래하는 행위가 횡행하고 있다. 취재팀이 SNS 등을 확인한 결과 미프진을 음성적으로 손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기자가 검색을 통해 찾아낸 ‘미프진 판매’ 계정에 “미프진 구매 가능할까요”라고 연락하자 수 초 내 “가능하다”는 답장이 왔다. 판매자들은 공통적으로 “임신 12주 이내에 미프진을 복용하면 100% 가깝게 안전 낙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설명은 달랐다. 최안나 대한의료정책학교 교장은 “임신 9주가 넘었을 때 미프진을 복용하면 불완전 유산과 과다 출혈의 가능성이 있다”며 “전문의 지도 없이 미프진을 복용하는 것은 독약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 약은 두통, 복통, 과도한 출혈 등의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낙태약을 절박하게 구하려는 여성들의 심리를 이용해 가짜 약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해 9월에는 SNS와 불법 사이트에서 가짜 ‘미프진’을 판매한 판매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 수사기관도 혼란… “입법 늦어지면 위험 커져”

입법 공백의 부작용은 불법 낙태약 거래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6월에는 36주 태아를 임신 중이던 젊은 여성 유튜버가 자신의 낙태 이야기를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가 여성과 시술 의사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어떤 죄목을 적용해야 할지, 살인죄 적용이 가능할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낙태 허용 임신 기간 등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명확히 마련되지 않는 한 혼란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체 법안이 없다 보니 여성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정보도 체계적이지 않다”며 “입법 공백이 길어질수록 불법 판매, 부작용을 겪는 여성 등 혼란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2020년에 임신 1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몇 차례 대체 입법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입법이나 법 개정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임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할지, 복용하는 낙태약 유통을 허용할지 등을 둘러싸고 종교계, 여성계 등 각계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여성단체들은 6·3 조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등 주요 후보들의 공약에 낙태죄 대체 입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동화 산부인과 전문의는 “국가적으로 임신 중절 관련 법률이 없어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낙태 방법들이 SNS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며 “적절한 법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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