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광주 동구 금남로 광주첨단3지구 AI(인공지능)창업캠프 3층에서 AI창업캠프 관계자들이 스타트업 기업인 메리핸드의 AI 진단기기를 시연해보고 있다. 인공지능산업융합사업단 제공
“사람이 현미경으로 결핵균을 확인하면 하루에 15건밖에 못 합니다. 하지만 AI는 1시간에 3, 4건씩 처리합니다. 이 방식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사항입니다.”
지난달 20일 광주 동구 금남로 광주첨단3지구 내 ‘인공지능(AI) 창업캠프’에서 만난 김용혁 페르소나AI 자회사 메디큐스타 부사장이 말했다. 이곳은 광주시가 조성한 AI 집적단지로, 헬스케어·빅데이터·AI 플랫폼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70여 개가 입주해 있다. 직원 수 10명 이하의 소규모 기업이 대부분이다.
단지는 사무 공간은 물론 공유 주방, 수면실, 샤워실 등 24시간 개발 환경이 가능하도록 편의시설도 갖췄다. 김 부사장은 “광주시가 신생 AI 기업을 적극 지원하면서 생태계가 잘 구축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 SOC 대신 AI를 선택한 광주
1995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지방자치가 본격 출범한 후 30년 동안 각 지방자치단체는 고유한 강점을 살려 지역 맞춤형 산업 전략을 추진해 왔다. 광주시는 AI를 미래 핵심 산업으로 선정하고 집중 육성하고 있다.
2019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광역자치단체들에 지역 핵심 사업을 요청했을 때, 다수의 지자체가 철도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을 제안했다. 반면 광주시는 ‘AI 특화단지 조성’을 내세웠다. 이 제안은 국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고, 2020년부터 총 4269억 원이 투입됐다.
그 결과 2023년 광주첨단3지구에 AI데이터센터가 완공됐다. 올해 하반기에는 AI 실증장비 77종과 자율주행 드라이빙 시뮬레이터가 본격 가동된다. 창업동과 인근 지식산업센터를 포함해 200여 개 AI 기업이 입주를 앞두고 있다.
특히 ‘공공형 AI데이터센터’는 AI 집적단지의 핵심 시설이다. AI 기술 개발에는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고 고성능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컴퓨팅 자원이 필수다. AI데이터센터는 이런 연산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기업들이 자체 인프라 없이도 연구개발(R&D)을 할 수 있게 돕는다. 공공형 AI데이터센터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민간이 아닌 공공 주도로 운영되기 때문에,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도 고비용의 컴퓨팅 자원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광주 AI데이터센터는 최근 5년 동안 1166개 기업이 총 2만2000건의 AI 관련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1000억 원 상당의 컴퓨팅 서비스를 무료 또는 저렴하게 지원했다. 지역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주권 AI’(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AI 개발) 환경과 저렴한 이용 비용 덕분에 삼성 같은 대기업들도 이 센터를 활용하고 있다.
AI 플랫폼과 자율주행 무인로봇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써니팩토리’는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통한다. 이지훈 써니팩토리 대표(45)는 “민간 AI 서버를 이용했다면 월 2000만 원, 연 2억400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공공형 데이터센터 덕분에 회사를 실질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센터 이용을 위한 최근 5년간 평균 경쟁률은 3 대 1에 달한다.
광주시는 AI 인재 양성에도 적극적이다. 초등학생 대상 프로그램부터 AI영재고, AI융합대학, 대학원, 전문 교육기관인 ‘AI사관학교’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췄다. 페르소나AI는 “AI사관학교 졸업생 10명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기업 유치 성과도 뚜렷하다. 최태조 광주시 인공지능산업실장은 “2018년부터 AI 산업 기반을 조성해 현재까지 299개 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이 중 150개 기업이 광주에 실제로 사무실을 개소했다”며 “스타트업이 성과를 내기까지 최소 10년 이상 안정적인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지방이 주도하는 첨단 산단 모델”
한국의 AI 시장 규모는 올해 3조4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년보다 12.1% 성장한 수치로, 2027년엔 4조46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는 이런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 신산업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기업, 인재, 연구기관을 한데 모으는 전략을 펴고 있다. AI 분야에서도 실리콘밸리처럼 고밀도 집적화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광주시는 컴퓨팅 자원, 인재 양성, 기업 유치, 행정 지원 등 이른바 ‘4대 핵심 자원’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총 6000억 원을 투입해 ‘AX(AI-based Augmented eXperience) 실증밸리’도 조성한다. AX는 AI 기술을 활용해 사람과 기술의 소통을 더 쉽고 편리하게 만든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고객 질문에 자동으로 응답하는 AI 상담원이나 건강 상태를 분석해 맞춤형 코칭을 제공하는 AI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AI 개발에 필요한 고성능 컴퓨팅 자원(GPU 서버 등)을 지원하는 국가 AI컴퓨팅센터 유치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상진 인공지능산업융합사업단장은 “광주는 AI 기술뿐 아니라, 산업에 필수적인 신재생에너지 전력망과 산업용수 등 기반시설을 고루 갖춘 국내 유일의 도시”라며 “글로벌 AI 도시로 도약할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에는 기반시설, 인재 양성, 기업 활동 등을 두루 갖춘 AI 생태계를 배우기 위해 전국 지자체의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광주의 AI 산업 육성을 ‘지방정부가 미래지향 산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모범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김광수 성균관대 인공지능융합원장은 “정부가 지역에 강제할 수 없는 산학연 연계형 산업집적단지를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조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광주가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자리 잡는다면 다른 지자체에도 훌륭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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