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처우 개선, 中-대만처럼 국가 주도로 돈 투자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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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서울과학기술대 총장
평생 직업-연봉 보장에 ‘의대 쏠림’… 공대 오도록 정책-재원 지원해야
올해 첨단학과 총 102명 추가 증원
학과 상관없이 AI 교육 필수 수강… 이공계-비이공계 융합연구도 지원

김동환 서울과학기술대 총장은 지난달 24일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분야뿐 아니라 자동차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라며 “김대중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벤처기업 활성화를 강조한 것처럼 새 정부도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이공계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김동환 서울과학기술대 총장은 지난달 24일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분야뿐 아니라 자동차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라며 “김대중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벤처기업 활성화를 강조한 것처럼 새 정부도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이공계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한국보다 인구가 적은 대만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완전히 앞섰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대 광풍과 이공계 처우 문제로 인재를 놓치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재원을 투자해야 합니다.”

김동환 서울과학기술대 총장(62)은 정부가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며 이처럼 강조했다. 1910년 개교한 국립 종합대인 서울과학기술대는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다. 김 총장을 지난달 24일 서울 노원구 서울과학기술대 대학본부에서 만났다. 김 총장은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미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 박사를 받은 뒤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수 학생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대로 쏠리는 것을 어떻게 보나.

“학생이 의대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고소득과 평생 직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이공계 학생들에게도 보장해야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 최고 수준의 개발자라면 정년 없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내 대기업 최고 엔지니어가 50대 후반에 은퇴하고 미국이나 중국으로 떠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은퇴한 엔지니어가 대학에 오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연봉이 문제인데 국가가 절반이라도 지원해 주면 좋겠다. 첨단 분야 인력 보수 중 일정 부분을 정부가 한시적으로라도 의료 인력에 버금가게 지원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지원하면 이공계 인재를 양성할 수 있나.

“중국이 정확히 그렇게 했다. 대만도 경제적 지원을 바탕으로 AI 분야를 완전히 앞서가고 있다. 의사가 고귀한 직업이지만 공부가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나. 공대는 자유롭고 창의적이다. 처우도 좋고 평생 직업 길이 열리면 우수한 학생이 당연히 공대에 온다. 중국과 대만도 국가 주도로 지원하니 우수 인재가 이공계를 선호하고, 그 결과 강력한 기업이 나왔다. 이런 문제를 정책 입안자에게도 이야기해 봤는데 ‘결국 돈 문제 아니겠느냐’고 하더라. 재원이 투입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수 학생이 자신 있게 이공계를 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학은 과학 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대학은 지역 특성을 살려 첨단분야 하나씩은 반드시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은 지역 대학과 첨단분야 인재 양성을 같이 해야 한다. 현재 전국 대학 정원이 40만 명 정도인데 10년 뒤에는 대학 진학자가 20만 명도 안 될 거다. 수도권과 지역 대학이 함께 20만 명 양성 책임을 져야 한다. 수도권 학생이 지방의 우수한 기업에 안 가려는 건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 부분은 수도권 대학과 지역 대학의 상호 교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현재 정부 지원 사업 대부분은 지역 대학 중심인데 수도권 대학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그 대신 수도권 대학은 책임 의식을 갖고 지역 대학과 협력해야 한다.”

―새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은 어떤 방향이어야 하나.

“원론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거점국립대에 어마어마한 돈만 투입한다고 대학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좋은 학생과 교수를 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특성화된 대학을 지원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수도권 대학도 지역 대학과 협력하면 더 큰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우수 교수를 채용할 수 있게 규제도 개선돼야 한다. 국립대 교수는 공무원 보수 규정을 따라야 해 세계적 수준에 걸맞은 연봉을 받는 교수 채용이 어렵다.”

―서울과학기술대의 첨단분야 인재 양성 전략은….

“인공지능응용학과 30명, 지능형반도체공학과 40명, 환경공학과 20명, 컴퓨터공학과 12명 등을 추가로 증원했다. 올해 신입생부터 학과에 상관없이 AI 교육을 필수교과로 편성했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기존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와 기계·자동차공학과를 지능형로봇, 미래자동차 전공에 특화된 기계시스템공학부 및 기계공학과로 개편했더니 올해 무전공으로 입학한 신입생의 선호도가 높아졌다. 학생이 교육 수요자이기에 서울과학기술대는 계속 학생을 위해 혁신하겠다.”

―학문의 융합 연구도 강조하고 있는데….

“서울과학기술대에는 인문사회대학과 조형대학도 있다. 2024년부터 이공계와 비이공계 교수의 공동 연구를 지원 중이다. 융합 연구 책임자를 비이공계 교수가 맡게 한다. 예를 들어 도예과와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함께 유약 표면 처리를 공학적으로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한다. 이런 융합 연구에 학생들도 참여하니 자연스럽게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

―특성화된 전문대학원도 신설했다.

“한국원자력의학원과 2025학년도부터 의과학전문대학원을 운영 중이다. 방사선의과학 전공과 의생명과학 전공이 있는데 정원을 넘길 만큼 최근 후기 신입생 지원자가 많았다. 국방융합과학대학원도 K방산 고급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했는데 정원을 다 채웠다. 내년에는 창업대학원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공계 인재 성공 모델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26학년도 대입에서 수험생이 주목할 만한 학과는….

“바이오메디컬학과가 신설된다. 혁신신약, 나노바이오시스템, 디지털헬스 분야를 중심으로 28명을 선발한다. 신약 개발과 바이오데이터 분석, 디지털 헬스케어 등 첨단 의료기술 분야에 관심 있는 수험생에게 추천한다.”

―학령인구 감소 위기 때문에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는 대학이 많은데….

“대학으로서 위기의식도 있지만 산업도 문제다. 국내 학생은 학령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으니 대기업에 가려 할 것이고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기업에 갈 인력이 없다. 서울과학기술대는 우수한 외국인 학생을 유치해 석박사 과정까지 유도하고 협력 기업이나 기술 혁신이 이뤄지는 소부장 기업에 진출시킬 계획이다.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게 아니라 우수한 학생을 선별해 데려올 수 있도록 해외 유수 고등학교와도 협력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올해 많은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했지만 서울과학기술대는 동결했다.

“정부가 국립대에 등록금 동결을 권고해서였다. 하지만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등록금은 인상해야 한다. (등록금 동결 조건으로) 국가에서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내외 석학 등 우수 교원을 유치해 첨단분야 인재를 양성하고 싶어도 취약한 재정으로는 요원하다.”

#김동환 서울과학기술대 총장#과기대#이공계#의대 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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