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 등 산하기관 직원들이 인천 계양구 계양산 정상에서 포충망과 송풍기 등을 이용해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방제를 하고 있다.
2015년 6월 28일 인천 부평구 산곡동. 등에 붉은색을 띤 파리들이 무리를 지어 비행했다. 몸의 길이는 약 6mm 정도로 다리가 몸에 비해 긴 편이었다. 특이하게 크기 차이를 보이는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니기도 했다. 짝짓기 하는 모습을 연상시켜 ‘러브버그(Love Bug)’라고 불리는 벌레다. 이날 인천 낮 최고기온은 평년보다 3도 이상 높은 26.3도였다.
‘러브버그’로 알려진 붉은등우단털파리는 10년 전 당시만 해도 생소했다. 이듬해인 2016년과 2017년에는 국내에서 크게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7월 4일 인천 미추홀구 수봉산에서 다시 목격됐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인천 남동구, 서울 종로·용산·마포·은평구와 경기 고양시로 확산했고 2022년에는 경기 부천시와 광명시에도 번졌다.
2023년에는 동남부 일부를 제외한 서울 전역에서 발견됐고 경기 시흥·과천·구리·의정부시 등으로 확대됐다. 지난해에는 서울 송파·강동구, 경기 남양주·하남·성남·파주시에서 새롭게 관찰됐다. 최근 들어 여름이 본격화되는 6월 말, 7월 초가 되면 등장해 수도권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과거에 없던 생물체의 등장에 환경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혹시라도 인간에 해를 끼치는 게 아닌가 주민들의 걱정이 크다.
● 기온-습도 높아지면 ‘러브버그’ 번식 증가
러브버그는 중국 남부와 일본 오키나와에서 4, 5월과 9, 10월에 발생하는 외래종이다. 중국을 오가는 선박이 주로 정박하는 인천항 등을 통해 처음 유입돼 수도권으로 확산한 게 아닌가 추정한다.
실제 국내에서 발견된 러브버그는 중국 남부에서 발견된 개체와 유전적으로 닮았다. 러브버그는 국내에서 겨울 유충 상태로 있다가 6월경 번데기로 진화하고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성충으로 자란다. 약 1년 정도 유충 상태에 있고 번데기로 2주, 성충으로 3~7일 정도 산다. 짝짓기를 마친 뒤에는 암컷이 보통 400여 개의 알을 낳는다.
국내에서 개체수가 많이 늘어난 것은 기후 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5년간 서울 6월 평균기온은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다. 2021년 22.8도였던 서울의 6월 평균기온은 2022년 23.3도, 2023년 23.4도를 기록하다가 지난해 24.6도까지 올랐다. 서울연구원 정책리포트 ‘서울시 유행성 도시 해충 대응을 위한 통합관리 방안’에 따르면 현재 추세로 기온 상승이 지속될 경우 2070년 한반도 전역으로 러브버그 확산이 예측된다.
환경부 등이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서 발생한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2022년 4418건에서 지난해 9296건으로 늘었다. 인천의 경우 2022년 6, 7월 25건 수준이었다가 지난달에만 1512건이 접수됐다. 부평구와 계양구에 접수된 민원은 지난달 각각 579건과 548건으로 가장 많았다. 고양·부천·광명시를 중심으로 러브버그가 발견되는 경기도에는 지난달까지 민원이 3745건 접수됐다. 2022년에는 5건에 불과했다.
러브버그 천적은 아직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참새 까치 비둘기 거미 등 일부 조류와 곤충이 포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는 “해외에서 새로운 종이 유입되면 기존 생태계 내 생물이 먹이로 인식하고 잡아먹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천적이 없을 땐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태계에서 조절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러브버그가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출현하는 이유는 따뜻한 기온과 빛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열대 기후에서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중위도 온대성 기후대인 한반도가 사실상 러브버그가 생존할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는 것이다. 다만 기후변화, 열섬 현상, 도심 조명 등이 러브버그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조건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기온과 습도가 높아지면 낙엽과 풀잎 더미에서 자라는 러브버그 유충이 번식하기에 알맞은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러브버그는 이동성이 높다”며 “차량, 지하철 등 이동 수단을 통해 수도권에 확산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기후변화에 동양하루살이-대벌레 급증
최근 들어 기후변화로 각종 벌레가 넓은 지역에서 한꺼번에 많이 발생하는 ‘대발생’이 잦아지고 있다. 2000년대에는 ‘중국 매미’라 불렸던 꽃매미가 급증했고 최근 몇 년간은 동양하루살이가 대규모로 출현했다. 현재 산지에는 나무줄기나 잎과 비슷하게 생긴 대벌레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곤충 대발생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꽃매미 등 한반도에 적응한 외래종은 알이나 번데기로 겨울을 난 뒤 5월경 부화한다. 한반도에서 겨울 평균기온이 오르는 만큼 외래종 생존에도 유리하다. 국립생물자원관 보고서 ‘대발생 생물 발생 원인 및 관리 방안 연구’에 따르면 동양하루살이는 수온 상승, 수변 지역 신도시 개발, 도심 광원 증가 등의 영향으로 개체수가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온 상승 덕에 물속 유충이 성충으로 진화해 날아오르는 우화율이 높아졌고, 도심 조명이 화려한 수도권에는 곤충 대발생 빈도와 규모가 더 커졌다. 동양하루살이 대규모 피해가 접수된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한강과 탄천에는 유충이 거의 서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도심 광원이 동양하루살이 피해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한강 바지선에 광원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동양하루살이를 다른 곳으로 유인해 방제하고 있다.
대벌레는 겨울철 기온 상승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지난해 고도 400m 초과에서는 대벌레 알의 부화가 진행되지 않았으나 고도 300m 이하에서는 평균 21.6% 부화했다. 연구진은 “겨울철 월동 기온 상승이 부화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현상이 다년간 이어지면 대벌레 대발생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벌레는 곤충에만 감염되는 곰팡이인 녹강균에 약하다. 국립생물자원관 보고서 ‘환경문제 생물종 연구’에 따르면 녹강균에 감염된 대벌레는 사망률이 크게 높았다. 여름철 강수량이 늘어 상대습도가 90%를 웃돌면 대벌레의 녹강균 감염과 치사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 장마 기간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내리는 ‘마른장마’가 이어지면서 강수량이 줄었고 녹강균 감염 가능성이 줄어 대벌레가 크게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 “익충도 많으면 스트레스…친환경 방제 교육을”
러브버그는 익충으로 분류된다. 독성이 없고 유충은 토양 내 유기물 분해를, 성충은 화분 매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체가 너무 많다 보니 혐오감을 불러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해충 인식 및 경험’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86%가 “이로운 곤충도 대량 발생해 손해를 끼치면 해충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94%는 러브버그 등을 접할 때 “해충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정부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질병 매개체인 모기 등 위생해충에 대해 조치할 수 있지만, 해충 자체에 대한 방제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게다가 러브버그는 질병을 옮기지 않기 때문에 위생해충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친환경 방역에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김위상 의원은 “현행법에 대발생 곤충에 대한 미비 사항이 많은 상황”이라면서 “러브버그, 대벌레, 동양하루살이 등 대발생 곤충을 효율적으로 방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에 착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날개가 젖으면 다시 날지 못하는 러브버그의 특성을 활용해 물을 강하게 뿌리는 방법으로 방제 작업을 했다. 광원을 이용해 러브버그를 유인하는 포충기 설치 등 시범사업도 진행 중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 청룡산에 백색광 발광다이오드(LED) 등과 자외선 LED 등을 설치한 뒤 러브버그 포획 결과를 비교하자 1시간 동안 백색등에서 13개, 자외선등에서 63개가 잡혔다. 자외선 LED가 성충을 유인한 것으로 보인다. 유호 국립생물자원관장은 “살충제를 쓰면 목표하는 생물 이외에 다른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황소개구리와 같이 생태계에 두면 자연적으로 개체수 조절이 되는 사례가 있다. 화학적 방역보다는 물리적 방제를 우선 해야 한다”고 했다.
주거 지역에서 러브버그가 발견됐을 때 처리하는 방법을 홍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신경독성을 이용해 곤충을 죽이는 살충제는 어린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유발하는 등 결국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며 “가정에서도 물을 뿌리거나 방제 끈끈이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사체에서 악취가 심하게 나기 때문에 화분 등에 파묻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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