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해병 수사 외압 사건을 맡은 이명현 특별검사가 1일 대전 국립현충원 채상병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
채 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조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의 윤석열 전 대통령 자택을 압수수색 하는 동시에 김태효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김 전 차장은 이른바 ‘VIP 격노설’을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VIP 격노설은, 2023년 7월 19일 수해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숨진 해병대 제1사단 채수근 상병(당시 일병)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해병대 조사 결과를 받고 격노했고, 이후 이첩 보류, 조사 결과 수정 등으로 이어졌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당시 군, 여권(국민의힘), 대통령실에서는 VIP 격노설을 부인하는 취지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 전 차장의 이번 특검 조사를 계기로 이전 관련 발언을 정리했다.
● 국방부 “사실 아니다”-대통령실 “보고도 안 했다”
2023년 8월 21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채 상병 조사 과정에서의 ‘대통령의 격노’ 등 외압 의혹이 불거지자 “안보실이나 대통령실이 어떤 그게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국회에 출석한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앞줄) 뒤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뒤)이 지나가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23년 8월 28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사단장을 처벌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미리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보고를 받자마자 격노할 까닭이 없다”며 “보고받기 전부터 사단장을 수사선상에 올리면 안 된다는 조언을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의 격노로 발칵 뒤집힌 국방부는 같은 날 낮 12시 언론 브리핑과 국회 설명회를 모두 취소시켰다”며 “이 장관은 오후 2시 51분경 차관에게 사건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오후 3시 18분경 박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때부터 사건인계서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삭제하라고 하는 등 외압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전하규 당시 국방부 대변인은 “그런 내용이라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23년 8월 30일 이관섭 당시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지난달 31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고 채수근 해병 순직 사건과 관련된 군의 수사 결과가 대통령께 보고됐습니까?”라는 물음에 “보고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역시 대통령은 몰랐다는 맥락이다.
2023년 8월 30일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은 국회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과) 통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외압설을 일축했다.
같은 날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도 국회에서 같은 해 7월 31일 수석비서관회의 때는 채 상병 사건이 보고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도 “조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보고드린 바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사건을 보고 받지도 않았으니 격노를 했을 리도 없다는 맥락이다.
2023년 8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대령을 수사한 군검사는 군사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박 대령이 ‘VIP 격노설’을 주장한 것에 대해 “망상에 불과하다”고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령은 앞서 같은 달 2일 보직 해임됐다.
2023년 9월 4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대통령 격노라든지, 혐의자를 제외하라고 외압을 했다든지 이런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듬해 5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는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 尹 “질책성 당부”-국힘 “격노가 죄냐”
지난해 2월 1일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은 박정훈 대령에 대한 군사법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윤 대통령이 격노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격노한 것이 사실이냐”는 판사의 질문에 “그런 사실 없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5월 9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해 5월 9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VIP 격노설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당시 채 일병 순직 사고 소식을 듣고 저도 국방 장관에게 질책을 했다. 생존자 구조하는 상황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 시신 수습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을 해서 인명 사고가 나게 하느냐. 이렇게 질책성 당부 한 바 있다”고 대답했다. 수사 결과에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책이었단 뜻이다.
지난해 5월경 공수처는 해병대 간부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계환 사령관으로부터 VIP 격노설을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령관은 이를 부인했다.
지난해 5월 23일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한 라디오에서 VIP 격노설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통령이 격노하면 안 되느냐”며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면 화를 잘 낸다는 이른바 불통설에 기반한 얘기”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이 국가를 운영하면서 본인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표시하는 것을 두고 모두 다 격노설이라고 포장을 해서 무슨 심각한 직권남용을 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됐다”라고도 했다.
지난해 5월 24일 이종섭 당시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VIP 격노설은 억지 프레임이고 이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며 “대통령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 ‘사단장을 빼라’라는 말을 듣거나 지시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26일 성일종 당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TV에 출연해 “대통령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형사처벌 하자는 해병대 수사단 결론이) 맞느냐라고 국군통수권자로서 이야기를 한 거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다고 했다. 이어 “격노한 게 죄냐”고 반문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제1차장(왼쪽). 맨 오른쪽에는 마스크를 쓴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앉아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난해 7월 1일 국회 현안 질의에서 김태효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윤 대통령이 저희 앞에서 화낸 적이 없다. 안보실 회의에서 격노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 할 수 있겠는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걸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묻자 김 차장은 “들은 적이 없고 주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순직 해병대원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정진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윤 대통령이 격노한 것이 맞느냐”고 묻자 “제가 부임한 지 두 달 됐는데 격노설이나 진노설은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2일 유상범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라디오에서 “전문의 전문을 가지고 그것이 여론에서 갑자기 격노설로 불거진 부분”이라며 “일단 그것(VIP 격노설)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말했다.
11일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하는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주변에서 해병대 예비역연대 회원이 항의를 보내고 있다. 뉴스1 대체로 당시 군 및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윤 전 대통령의 격노설을 부인해 왔다. 국민의힘에서는 격노설에 실체나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6·3 조기 대선, 이재명 정부 출범이 이어졌다.
현 정부에서 출범한 3대 특검 중 채 상병 특검은 채 상병의 죽음을 둘러싼 조사 외압, 대통령 격노설 등을 수사 중이다. 김태효 전 차장은 11일 특검의 1차 출석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화내는 걸 들은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조사를 마친 뒤 나오며 취재진에게 “성실하게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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