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수요 예측 등으로 혈세 낭비 지적을 받아 온 경기 용인경전철. 16일 대법원은 주민들이 전 용인시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용인=뉴시스
혈세 낭비 논란을 빚었던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해 이를 추진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시민들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단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전철 수요를 실제보다 17배 이상 부풀려 예측한 국책연구기관의 책임도 인정됐다. 세금을 낭비하는 민자사업을 주민소송 대상으로 삼아 배상 책임을 받아낸 첫 사례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선거 기간 남발되는 경쟁적인 포퓰리즘 공약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주민소송단)이 낸 손해배상 청구 주민소송 재상고심에서 이정문 전 용인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지난해 2월 이 사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이 전 시장, 한국교통연구원 및 소속 연구원 3명이 총 214억7000만 원을 용인시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다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 중 연구원 개인에 대한 배상 책임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 전 시장의 후임이던 서정석, 김학규 전 용인시장의 손해배상 책임은 2심부터 인정되지 않았다.
용인경전철은 2002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추진됐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경쟁적인 ‘경전철 공약’이 남발됐고, 이 전 시장도 상대 후보인 예강환 당시 시장을 따라 용인경전철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이를 뒷받침해 하루 16만 명이 용인경전철을 이용할 것이라는 교통 수요 예측 결과를 내기도 했다.
문제는 2013년 4월 개통한 열차의 하루 평균 이용객이 수요 예측의 17분의 1 수준인 9000여 명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1조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지만 열차는 텅 빈 채로 운행해 적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설상가상 운영사의 수입을 보장한다는 협약에 발목 잡혀 용인시가 운영사(캐나다 봄바디어 컨소시엄) 측에 약 8500억 원을 물어주기도 했다. 2043년까지 추가로 메꿔줘야 할 수입까지 합하면 혈세 낭비가 총 2조 원 규모가 넘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 ‘혈세 낭비 공약’ 첫 주민소송… 12년 다툼 끝 승소
2013년 시민들이 제기한 이번 소송은 2005년 주민소송 제도 도입 이후 지자체가 시행한 민간투자사업 관련 사항을 주민소송 대상으로 삼은 최초 사례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주민들은 공금의 지출이나 재산의 취득·관리·처분을 비롯해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 체결·이행 사항과 관련해 지자체장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낼 수 있다.
주민소송단은 이날 선고 결과를 받아들기까지 12년간 대법원을 포함해 다섯 번의 재판을 거쳤다. 당초 1·2심은 주민소송 청구를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민소송은 주민감사를 청구한 경우에만 제기할 수 있는데, 주민들이 청구한 소송과 감사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2020년 7월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 환송하면서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시 재판부는 “주민소송이 감사 청구와 관련이 있는 것이면 충분하고, 동일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선고 직후 주민소송단은 “대형 민간투자 사업에서 주민 측이 승소한 최초 사례”라며 “혈세 낭비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주민의 손으로도 가능함을 보여준 역사적 판결”이라고 밝혔다. 주민소송 손해배상 청구 승소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해당 지자체장은 확정 판결 후 60일 내에 당사자에게 손해배상금 지급을 청구해야 한다. 용인시는 “법이 정한 절차를 차질 없이 진행해 손해배상금을 받아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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