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대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사법리스크 족쇄를 벗게 됐다. 이 회장이 2016년 11월 13일 참고인 신분으로 첫 검찰 조사를 받은 지 3168일 만이다.
법조계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이끌었던 당시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벌이며 불필요한 경영 불확실성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 2심 재판부가 이 회장에게 적용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검찰이 대법원까지 끌고갔지만, 대법원 역시 19개 혐의 전부 무죄로 판단하면서 ‘기계적 상소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2025.7.8/뉴스1삼성의 사법 리스크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 등과 접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2016년 11월 처음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같은달 30일 임명돼 검찰로부터 수사를 넘겨받은 박영수 특별검사는 2017년 1월 12일 이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어 구속영장을 2번 청구해 2017년 2월 구속시킨 뒤 뇌물 공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당시 수사는 특검 수사팀장과 특검 파견검사였던 윤 전 대통령과 한 전 대표가 주도했다.
2018년 2월 석방돼 재판을 받던 이 회장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끝에 2021년 1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고 재수감됐다. 그러다 2022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560일간 수감됐고, 재판에 185회에 출석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역시 수감기간이 둘 다 589일에 이르렀다.
사정당국의 수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을 고발하면서 검찰 수사가 다시 시작된 것. 분식회계 의혹에 초점이 맞춰져있던 검찰 초기 수사는 2019년 8월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으로 부임하면서 이 회장의 불법승계를 위한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 의혹으로 확대됐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 전 대통령, 특별수사를 지휘하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한 전 대표였다.
비록 검찰 수사는 몇차례 제동이 걸렸지만 검찰은 끝내 기소를 강행했다. 2020년 6월 소집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10 대 3 의견으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고, 비슷한 시기 검찰이 이 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그러나 검찰이 2020년 9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라며 불구속 상태에서 이 회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2018년 수심위 제도가 도입된 이후 검찰이 처음으로 수심위 권고에 불복한 사건이었다.
● “기계적 상소 관행 제동 걸어야”
검찰은 이어진 1심 재판부터 항소심,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판에서 패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적은 비용으로 경영권을 넘겨받기 위해 삼성물산 주가는 인위적으로 낮추는 반면 제일모직 주가는 띄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을 비롯한 하급심 법원은 삼성물산 합병은 승계만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었고, 합병 이후 경영권이 안정돼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 과정에서도 일부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지만 처벌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검찰이 제시한 주요 증거들에 대한 증거능력도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의 적법성, 재전문증거의 증거능력,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의 예외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그동안 1, 2심 법원 역시 대법원과 같은 판단을 내놨지만, 검찰은 항소와 상고를 강행하며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2심 무죄선고 직후인 올 2월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공소 제기 담당자로서 국민께 사과한다”고 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 사건과 관련해 사과한 검사도 없었다. 동아일보는 이날 이 전 원장의 입장을 묻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선진국처럼 검찰의 무분별한 상소를 제한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피고인이 1심 혹은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동일한 범행으로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협을 재차 받지 않는다’는 수정헌법 5조에 따라 검찰이 상소할 수 없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상소 인용 가능성이 낮은 경우 상소를 포기하도록 규정한 대검찰청 예규를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구민기 기자 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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