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국세청장 추적 의지… 다시 소환된 ‘노태우 비자금’

  • 주간동아
  • 입력 2025년 7월 26일 0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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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숙 ‘904억 원’ 자필 메모 노소영 이혼소송서 제시… 새 비자금 논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10월 27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대통령 재임 중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동아DB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10월 27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대통령 재임 중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동아DB
“내 재산은 모두 5억 원가량.”(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1988년 4월 21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 발언)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의 ‘4000억 원 비자금’ 의혹 제기에) 제발 수사를 제대로 해서 진상을 꼭 밝혀달라. 정말 그 비자금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1995년 10월 20일 노 전 대통령 측 입장)

“대통령으로 재임한 5년 동안 약 5000억 원의 통치자금이 조성됐다. (중략) 쓰고 남은 통치자금은 퇴임 당시 1700억 원가량 됐다. (중략) 국민 여러분 앞에 무릎 꿇어 깊이 사죄드린다.”(노 전 대통령의 1995년 10월 27일 대국민 사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임광현 국세청장이 ‘노태우 비자금’ 환수 의지를 밝힌 것을 계기로 이재명 정부가 추적할 비자금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일가 비자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요구에 동의했다. 임 국세청장은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시절 “국세청이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가 은닉한 비자금을 세무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제시한 ‘904억 원 메모’가 비자금 은닉 및 대물림의 근거라는 취지에서다.

“국세청이 盧 비자금 세무조사해야”
2013년 9월 노 전 대통령이 대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추징금 2628억 원을 완납하면서 ‘노태우 비자금’ 사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노소영 관장이 최태원 회장과의 재산분할 소송 과정에서 모친 김옥숙 여사가 자필로 쓴 ‘904억 원’ 메모를 제시하자 논란이 재점화됐다. 해당 메모에 ‘노태우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현금성 자산 218억5000만 원과 900억 원대 자금의 사용처 및 보관처 등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노 관장 측이 천문학적 재산분할을 이끌어낸 핵심 근거가 역설적으로 ‘노태우 비자금’과 관련된 새로운 의혹을 불러일으킨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비자금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사죄’로 표변한 바 있다.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이 1995년 10월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비자금 4000억 원을 시중은행에 100억 원씩 분산 예치했다”고 폭로하자 파문이 일었다. 이튿날 노 전 대통령 측은 “수사로 진상을 밝혀달라”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지만 이후 비자금 조성을 둘러싼 구체적인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의혹이 제기되고 8일 만에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비자금 실체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취임 직후 자기 재산이 5억 원가량이라며 각종 부동산과 예금 내역까지 공개한 노 전 대통령의 말이 퇴임 2년 만에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1995년 11월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한 검찰은 대대적인 수사 끝에 노태우 비자금 4189억 원을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1997년 4월 노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했다.

노태우 비자금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직후부터 은닉해놓은 별도 비자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른바 ‘김옥숙 비자금’과 관련된 의혹이 대표적이다. 당시 민주당 비자금진상조사위원장이던 강창성 의원은 “김옥숙 여사의 친인척이 관리하는 것(비자금)은 전혀 노출되지 않고 있다”며 “김 여사가 비자금 2000억 원을 별도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5년에는 대검 중앙수사부가 약 12억 원이 든 김 여사 명의 예금계좌 2개를 추가로 발견해 추징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해당 자금이 비자금이라고 강하게 의심했지만, 김 여사 측이 추징에 응해 자금 출처와 관련된 별도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추징금을 완납하는 과정에서도 은닉 비자금이 더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친인척을 상대로 “추징금을 납부해야 하니, 예전에 맡긴 비자금을 돌려달라”는 취지로 법적 공방을 벌이면서다. 노 전 대통령 측은 2009년 동생 재우 씨와 조카를 상대로 “내가 맡긴 120억 원으로 세운 냉장회사 소유권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2012년에는 사돈이던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에게 맡긴 비자금 230억 원을 신 전 회장이 마음대로 개인 빚을 갚는 데 썼다며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2013년 노 전 대통령 측은 재우 씨와 신 전 회장이 각각 추징금 150억 원, 80억 원을 대납하는 조건으로 다툼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노 전 대통령 일가는 추징금을 완납했다.

김옥숙 여사, 152억 기부·출연
최근 노 전 대통령 일가가 비자금을 공익법인과 재단법인에 은닉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세청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 여사가 공익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에 2016~2021년 147억 원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물려준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공익법인은 김 여사와 노소영 관장이 각각 147억 원, 5억 원을 출연해 세운 것으로, 현재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가 이사장으로 있다. 김 여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2016년 10억 원, 2017년 10억 원, 2018년 12억 원을 기부한 데 이어 재헌 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하자 2020년 95억 원, 2021년 20억 원으로 기부 규모를 늘렸다. 김 여사는 2022년 설립된 재단법인 ‘노태우센터’에 5억 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이렇다 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고령의 김 여사(90)가 기부 및 출연한 총 152억 원의 출처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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