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갈등’ 1년반만에 첫 사과
“사태 장기화 원인, 의료계도 책임”
환자단체 “생명, 반대수단 이용 말길”
국민청원서 ‘복귀 특혜’ 지적 잇달아… 교육부 “의대생들 상처도 보듬어야”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환자단체연합회를 찾은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정부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지난해 2월 수련병원을 떠난 사직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약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환자 불편 등과 관련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사직 전공의 상당수가 올해 9월 복귀를 희망하고 있는 가운데 수련 특혜 등 논란이 일면서 비판 여론을 고려한 만남으로 보인다. 환자 단체는 사과 의사를 밝힌 전공의에게 “다시는 환자의 생명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했다.
● 전공의 “불편-불안 겪었을 국민 여러분께 사과”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 등 전공의 4명은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사무실을 찾아 “1년 5개월 이상 길어진 의정 갈등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사태가 장기화한 데 대해 의료계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정 갈등 과정에서 불거졌던 의료계 막말 논란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한 위원장은 “의료계를 대표하고 이끄는 위치에 있었던 일부 의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도 대한민국의 일원인 젊은 의사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며 “저희는 앞으로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책무를 다하고 보다 나은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은 전공의들이 환자단체 사무실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성사됐다. 의정 갈등 이후 환자단체와 사직 전공의가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환자단체들은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향해 사과를 요구했다. 또 환자들이 의정 갈등으로 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에 나서 달라며 국회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정부 압박을 사과가 늦어진 이유로 들었다. 정정일 대전협 대변인은 “작년엔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강하게 압박하면서 전공의들이 다 숨어 있는 상태였다. 누가 이름을 걸고 나와 공개적으로 얘기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다”며 “사태가 길어지고 꼬이다 보니 사과가 늦어진 것 같다. 어려운 점도, 무서운 점도 많았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정부와 여당은 의료 공백의 책임자인 전공의 복귀에만 집중하고 환자의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나 입법 개선에는 관심이 부족하다”며 “다시는 환자의 생명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 조건 없는 자발적 복귀를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 “전공의-의대생 특혜 논란 의식한 사과” 분석도
전공의들이 환자단체를 찾아간 배경에는 특혜 논란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생 유급 방지 방안과 전공의 단체가 요구하는 수련 연속성 보장 방안을 두고 특혜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게시된 ‘의대생·전공의에 대한 복귀 특혜 부여 반대에 관한 청원’에는 7만5000명 이상이 동의했다. 의대생 복귀 안을 만든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은 “국민의 염려가 컸기 때문에 의대생들도 복귀 과정에서 사과 표현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복귀 의대생을 두고 특혜 논란이 불거지는 것과 관련해 “(특혜에 관해서보다는) 학생들의 상처를 보듬고 어떻게 교육을 잘할지에 집중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구연희 교육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국민, 대학, 학생들이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우리 모두에게 잃어버린 시간이었다”며 “의대생 간 갈등 문제는 각 대학에서도 신경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학교와 함께 세밀하게 보듬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와 국회, 대학 총장들이 국민과 의료계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의료 갈등의 핵심 원인은 윤석열 전 정부가 충분한 논의 없이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한 데 있다”며 “이에 동조하거나 침묵한 일부 대학 총장들, 정치권, 국회는 국민과 의료계 앞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구체적 재발 방지 약속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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