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접근 금지 조치에도 살인으로 이어진 스토킹

  • 주간동아
  • 입력 2025년 8월 9일 09시 28분


코멘트

2022년부터 보호 중 14명 사망… “위험성 판단 기준 재정립해야”

대전에서 전 연인을 살해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8월 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고자 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뉴스1
대전에서 전 연인을 살해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이 8월 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고자 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뉴스1
7월 말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다. 2021년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통과 이후에도 피해자 보호와 피의자 관련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적극적 조치를 넘어 스토킹 피의자의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해야 살인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3년 지났지만
스토킹범죄로 나흘간 여성 3명이 사망하거나 중태에 빠졌다. 7월 26일 경기 의정부에서 스토킹 피해를 겪던 5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28일 울산에서는 20대 여성이 전 애인의 흉기에 크게 다쳐 중태에 빠졌고, 그다음 날 대전에서 30대 여성이 헤어진 연인에게 살해당했다.

스토킹범죄는 2021년 스토킹처벌법이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지 22년 만에 통과되며 경범죄를 벗어나 중형(3년 이하 징역,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이 가능해졌다. 스토킹범죄는 살인·성폭행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별도의 입법 요구가 이어져왔다. 2023년에는 스토킹처벌법이 개정되면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삭제됐고,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스토킹방지법이 함께 통과됐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경찰은 긴급응급조치로 피의자에게 1개월간 접근 금지와 통신 제한 명령을 할 수 있다. 또 검사는 사법경찰관 요청에 따라 피의자에게 서면경고, 접근 금지,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구금 등 잠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 주거지 순찰, 신변 경호, 위치추적장치(스마트워치) 등을 제공하는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도 진행된다.

하지만 법 시행 후에도 스토킹에서 이어진 강력범죄가 잇따르자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7월 26일 사망한 피해자는 스토킹과 관련해 세 차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검찰에 잠정조치를 요청했으나 검찰 단계에서 “지속·반복적이지 않다”며 기각됐다. 잠정조치나 피해자 안전조치가 이뤄진 경우에도 살인이 발생해 주목을 끈다. 7월 28일 ‘울산 사건’의 경우 닷새 전 접근 금지 잠정조치를 받은 피의자가 이를 어기고 여성을 흉기로 찔러 중태에 빠지게 했다. 구금이나 전자발찌 착용 같은 조치는 없었다.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희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피해자가 안전조치를 받던 중 사망한 사건은 14건이다.

교제살인 사건 철저한 분석 이뤄져야
스토킹 피해자들은 경찰의 초기 대응 단계부터 스토킹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스토킹 피해자 14명을 인터뷰한 결과 일부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피해가 없지 않나” “(받은 문자메시지가) 욕이 아니니 구애 아니냐” “협박성 문자메시지가 아닌데 위협을 느끼냐” 같은 말을 듣기도 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스토킹 피해자를 대하는 경찰 태도가 천차만별이라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스토킹처벌법에 규정된 스토킹범죄의 정의도 한몫한다. 스토킹처벌법 제2조는 스토킹 행위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뤄져야 스토킹범죄라고 본다. 따라서 연인 등 피해자와 피의자의 관계가 형성된 후 발생하는 스토킹은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반복적’이라는 대목에 근거해 범죄 성립 여부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스토킹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우리 관계가 나아졌다며 경찰 조치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면서 “관계성 범죄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지만 수사관 개별 역량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이어 강력사건이 발생하자 대검찰청은 7월 30일 스토킹 행위자에 대한 잠정조치를 적극적이면서 신속하게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을 직접 듣겠다고 밝혔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 역시 사건이 발생한 대전서부경찰서를 찾아 “접근 금지 조치 중인 가해자 주변에 기동순찰대를 집중 투입하고, 수사관이 판단한 위험성에 따라 사건을 적극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수사 단계에서 적극성도 중요하지만 교제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피의자에 대한 위험성 판단 기준을 제대로 수립하고, 이를 일선 수사관들에게 교육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거절 살인, 친밀한 관계 폭력 규율에 실패해 온 이유’ 보고서를 쓴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위험성 판단 기준을 마련하려면 과거 교제살인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며 “스토킹범죄에 대한 모호한 정의도 스토킹범죄가 빈번한 관계성을 감안해 법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 법적 정의로는 일선 수사관이 스토킹이 발생한 맥락보다 눈앞에 드러난 일부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스토킹 피해자를 상담하는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제3자 눈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스토킹 피해자는 문자메시지 하나에도 일상에 큰 지장을 느낀다”며 “수사 과정에서 충분한 피해자 배려와 스토킹범죄에 대한 이해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01호에 실렸습니다》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