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독립운동 유적’ 돌보는 시민들… “독립투사 없인 우리도 없어”

  • 동아일보

코멘트

[방치된 독립운동 유적] 발족 5개월 ‘춘천 유산지킴이’ 모임
자영업자-주부-교수 등 55명 시민
후손 손길 끊긴 묘역-생가터 정비
잊혀진 유적-유공자 발굴도 힘써

남귀우 춘천항일애국선열유산지킴이 운영위원장(61)이 13일 강원 춘천시 박화지 의병장 묘소 앞에서 독립 유적지 발굴·관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춘천=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남귀우 춘천항일애국선열유산지킴이 운영위원장(61)이 13일 강원 춘천시 박화지 의병장 묘소 앞에서 독립 유적지 발굴·관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춘천=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잊힌 독립운동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시민들이 있다. 강원 춘천시에서는 올 3월 ‘춘천항일애국선열유산지킴이(유산지킴이)’ 모임이 발족했다. 55명의 시민이 지역 내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으로 모였다. 구성원은 자영업자, 주부, 교수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은 후손의 손길이 끊겨 방치된 독립투사의 묘나 생가 터를 관리하고, 오랜 시간 잊힌 독립운동 유적지를 발굴해 국가보훈부 현충시설 등록 절차에 나서는 등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13일 춘천시 남면에서 만난 유산지킴이 운영위원장 남귀우 씨(61)는 한국 최초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1860∼1935)의 묘에 쌓인 나뭇잎을 걷어내고 비석의 먼지를 손으로 떨어냈다. 윤 의사는 국내에서는 의병 투쟁을, 만주에서는 항일 투쟁을 이끌었다. 1994년 손자인 고(故) 류연익 광복회 강원지부장 등의 노력으로 유해를 만주에서 발굴해 이곳으로 이장했다. 하지만 증손에 이르러 사실상 관리가 끊겼다. 이에 유산지킴이 회원 10여 명은 지난달 이곳을 찾아 묘를 벌초하고 정비했다. 남 씨는 “묘역을 정비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수풀이 한 뼘 넘게 자랐다”고 말했다.

인근 박화지 의병장(미상∼1907)의 묘도 사정이 비슷했다. 지난달 유산지킴이 회원들이 이곳을 찾았을 당시엔 개나리 덤불이 2m 넘게 웃자라고 있어 진입조차 힘든 상태였다. 종손의 연락처가 기재된 팻말이 있었지만, ‘016’으로 시작하는 옛 번호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철제 표지판에는 박 선생의 이름이 ‘化知’가 아닌 ‘華芝’로 잘못 적혀 있었다. 남 씨는 “회원들끼리는 ‘봉사’라고 부르지 말자고 말한다”면서 “그분들이 안 계셨으면 우리도 없으니, 우리의 책임이다”라며 웃어 보였다.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독립유적과 독립유공자 발굴도 이들의 목표다. 박 의병장은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의병 소모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고문 끝에 순국했지만, 아직도 서훈이 완료되지 않았다. 회원들은 서류를 보완해 박 의병장의 서훈을 앞당기는 데 힘쓸 계획이다.

남 씨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이 많다”며 “고령의 후손들이 현충시설 발굴과 입증 자료 수집을 감당하기 어렵다.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이 유적들은 우리 세대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유적#춘천 유산지킴이#유공자 발굴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