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가 11일 농업직 공무원 다키타 도시오(瀧田利雄)가 받은 촉탁장, 견책 처분장 등 문서 5점을 공개하며 일제 식량 수탈 정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일제가 중일·태평양 전쟁 군량 확보를 위해 농업 전문가에게 조선 농민의 쌀을 빼앗는 공출(供出) 업무까지 맡기는 등 식량 수탈 총력전을 벌였다는 내용을 담은 문서가 공개됐다.
수필가이자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82·광주 북구)는 80주년 광복절을 맞아 18일 본보에 일제 농업직 공무원 다키타 도시오(瀧田利雄)가 받은 촉탁장, 견책 처분장 등 5점을 공개했다. 이들 문서 5점은 미곡 공출 등 식량 수탈 정책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다키타는 1905년생으로 일본 규슈제국대 농학부를 졸업한 뒤 함경북도 농무과장(농업시험장장)으로 근무하는 등 농업 전문 공무원이다. 그의 경력은 1943년 10월 경성일보가 발행한 조선인명록에 실려 있다.
황해도 농업직 공무원으로 농사시험장장을 맡았던 다키타는 1938년 6월 6일 당시 해주 지역 농사시험장 퇴비 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외양간, 농기구 등이 불에 타자 견책 처분을 받았다. 부하 직원 감독을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해 화재가 일어났다는 이유였다.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는 징계에도 불구하고 다키타를 1939년 6월 10일 황해도 농업 이사관으로 승진 발령시킨 뒤 해주에 있는 일제(조선) 육군 창고 보리 공출 업무를 맡기며 촉탁장을 줬다. 촉탁은 특정 업무를 임시로 부탁받아 수행하는 것이다. 징계를 받았지만 승진해 일제 군량 업무를 맡은 것.
당시 조선에는 육군 창고가 해주, 전북 군산 등에 2곳 있었다. 해주는 만주군, 군산은 일본 서부와 태평양 전쟁에 식량을 공급했다. 홍영기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농업 전문가에게 일본 육군 창고 보리 공출을 맡긴 것은 조선에서 식량을 수탈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전쟁 식량 수요가 증가하고 극심한 가뭄으로 조선, 일본 서부에서 극심한 식량 문제가 발생했다. 일제는 1939년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곡배급통제법을 실시하며 공출 제도를 시행해 조선 농민들에게 의무적으로 미곡을 팔도록 했다. 미곡 수탈 정책은 일제가 전시 군량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곡의 자유 거래를 통제하고 정부에 의무적으로 미곡을 팔도록 한 것이었다. 공출은 조선 식량 수급보다 일제 군수식량 확보를 위해 시행됐다.
일제는 곡물업자들로 구성된 배급조합을 도별로 조직해 도지사 책임하에 식량을 빼앗았다. 농민들끼리 감시·통제하도록 하고 경찰, 지방행정기관이 지원했다. 다키타는 1940년 11월 황해도 농업공무원으로 양곡 배급조합 전무, 1943년 8월 조선농회 비료 담당 사무, 1944년 9월 국민총력경남연맹 참사에 각각 촉탁됐다.
심 씨는 “다키타의 공출, 양곡 배급조합 전무 등 촉탁장 4장은 일제 미곡 수탈 정책 흐름을 보여준다”며 “공출 제도는 농민의 저항, 생산량 감소, 농촌 황폐화 등 각종 부작용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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