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돌봄은 기본… 남겨진 가족들 마음건강도 챙겨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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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1000만 한국, 품위있는 죽음을 묻다]
호스피스측 “유족 관리도 우리 일”
심리상담 프로그램 만들어 지원
유족들 수시로 찾아와 슬픔 나눠

지난달 14일 영국 런던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유가족 기념행사가 열리는 이날 한 노부부가 나무에 리본을 매달고 있다. 리본에는 고인을 기리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런던=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지난달 14일 영국 런던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유가족 기념행사가 열리는 이날 한 노부부가 나무에 리본을 매달고 있다. 리본에는 고인을 기리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런던=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맨다 해도 당신 같은 사람은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지난달 14일 영국 런던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정원. 높이 3m가 넘는 거대한 나무 앞에서 로이 벤슨 씨(81)가 손에 종이를 쥐고 자신이 쓴 시를 한 자씩 읊었다. 벤슨 씨는 호스피스에서 아내와 사별한 뒤 느낀 감정을 담아 시를 썼다. 행사에 참여한 30여 명의 유가족은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고 때로는 웃으며 벤슨 씨가 낭독하는 시를 들었다.

유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가족이 머물던 호스피스를 찾아 고인을 기리면서 함께 추억했다. 호스피스는 유가족을 공동체의 일부로 보고 사후에도 유가족에 대한 정서적 지원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나무에 리본을 매는 행사도 열렸다. 정원에 놓인 나무에는 300개가 넘는 리본이 흩날렸다. 리본에는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 등의 문구가 적혔다. 이날 행사에는 20년 전 호스피스에 머무른 가족을 떠나보낸 이도 참석했다.

호스피스 곳곳에는 쪽지와 함께 작은 인형도 놓여 있었다. 쪽지에는 ‘내가 당신을 미소짓게 만든다면 집에 들고 가 달라. 당신이 슬프다면 나를 꼭 잡고 있어 달라. 그러면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적혀 있었다. 3년 전 이곳에서 아내와 사별한 애덤 분 씨(61)는 “아들은 이곳에서 정신건강 상담을 꾸준히 받고 있다”며 “가족을 잃은 사람들끼리 슬픔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일종의 공동체에 가입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매년 1000명이 넘는 유가족이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방문한다. 호스피스는 유가족들이 찾아오는 기념행사 외에도 정기적인 애도 모임을 통해 유가족 간 교류 기회를 제공한다. 심리 상담 프로그램 또한 제공된다. 피오나 워킹쇼 유가족 지원 책임자는 “유가족 돌봄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유가족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돕고, 또 슬픔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대 호스피스 운동을 제안한 영국 간호사 시실리 손더스는 ‘총체적 고통’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단일한 고통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인 차원에서 고통을 다뤄야 한다는 의미다. 영적 고통은 종교와 무관하게 자아와 관련한 실존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고통에 가깝다. 호스피스 소속 목사인 앤드루 굿헤드 씨는 “총체적인 고통의 관점에서 최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러한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총체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호스피스에서도 유가족에 대한 정서적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프린세스 앨리스 호스피스의 지역사회 돌봄 담당자 레이철 바삭 씨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게 애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슬퍼하는 이들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정서적, 재정적 지원을 연결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스피스#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유족 관리#심리상담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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