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학부모가 자녀에게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공부 때문에 자녀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관계가 나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생각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러면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되면 어쩌나….’
이서윤 서울 우이초등학교 교사(사진)와 20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자녀와의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공부하도록 만드는 부모의 비법을 들어봤다. 16년 차 이 교사는 지난해 ‘초등 공부 정서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기분 상하지 않게 공부시키기 위한 부모의 대화법)’라는 책을 냈다.
ㅡ초등학생 시기 공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초등학생 시기는 공부에 대한 첫인상을 만들고, 공부에 대한 태도를 다듬는 시기다. 초등학생 때 ‘공부 정서’가 형성된다고 본다. 공부 정서란 ‘공부를 대하는 느낌’이다. 이것은 부모와의 관계,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능력,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로 결정된다. 공부와의 첫 만남을 시작하는 초등학생 때 공부 정서가 긍정적으로 형성돼야 앞으로 학습을 지속할 수 있다.”
ㅡ많은 부모들이 “공부 때문에 아이에게 화를 내고, 관계가 나빠진다”고 고민한다.
“아이에게 화가 나는 상황 대부분은 ‘불안’이나 ‘긴장’ 같은 부모의 감정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도움이 된다. ‘엄마가 꼭 시작하자고 해야 공부를 하니? 이게 네 공부지 엄마 공부야?’ 라고 화내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이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내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아이가 공부를 안하면 시험 점수가 나빠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잔소리하는 이유는 결국 내 불안감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부모는 살면서 여러 경험에 의해 쌓은 불안과 기준이 있고, 아이가 나보다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와 관계는 멀어진다. 이걸 이해해야 한다.”
ㅡ자녀가 스스로 공부하게 하려면 부모가 어떻게 도와야 하나.
“자기주도학습의 시작은 계획이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부모가 정해서 통보하면 아이는 하기 싫은 것이 당연하다. 계획을 세울 때 아이를 최대한 참여시켜서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대화를 통해 반드시 해야 하는 하루의 필수 과제를 정하고, 그 외 과제는 아이 자율에 맡겨 선택적으로 하게 한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다 하면 동그라미를 치게 하고, 일정 개수를 모으면 보상을 준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성공을 경험할 수 있다. 잘 지키지 못해도 ‘이럴거면 계획은 왜 세웠냐’고 닦달하지 말고, ‘작심삼일’을 반복 하면 된다. 아이가 그날 할 일을 일찍 마치면 자유롭게 놀게 하자. 단 게임이나 유튜브는 일정 시간으로 제한한다.”
ㅡ시켜야만 공부하는 아이를 바꿀 수 있을까.
“부모가 시켜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아이가 생각하도록 프레임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이제 숙제 해야지’ 라고 말하는 것은 명령이지만 ‘숙제 있다더니 지금 할 거야? 아니면 저녁 먹고 할래?’ 라고 물으면 자녀가 숙제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언제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스스로 공부할 아이라는 믿음 아래 선택할 수 있게 질문하면 아이는 시켜서 하는 아이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하는 아이가 된다. 또 어차피 공부를 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유쾌하게 해보자. ‘우리 아들 공부를 방해하는 악마가 있나? 엄마가 뽀뽀로 없애줄게’, ‘퀴즈를 맞히면 상품이 있어. 지금은 뭘 해야 하는 시간일까요?’ 처럼 말해본다.”
ㅡ공부하기 싫어 말대답 하고 말꼬리 잡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이겨야지, 기를 한번 꺾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싸우지 않는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어?’ 라며 부모와 아이의 욕구를 반영한 해결책을 먼저 찾는다. 그리고 이후에 함께 만든 해결책을 지키지 않거나, 다시 트집을 잡으면 그때는 (원칙을)관철시켜야 한다. ‘왜 해야 하느냐’, ‘지금 안 하면 안되느냐’ 등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답하거나 ‘우리 약속을 다시 생각하고 결정해봐’ 라고 말한다. 싫다고 계속 반항하면 미소를 보인 뒤 시계나 책을 가리키는 등 비언어적인 방법을 쓴다. ‘우리는 규칙에 대해 충분히 협의해서 더 이상 설명할 게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짜증을 냈더라도 결국 수긍하면 ‘규칙을 지켜줘서 고마워’, ‘멋지다’ 라고 칭찬해 준다.”
ㅡ집중 못 하는 아이를 다루는 비법이 있다면.
“해야 할 일을 뭉뚱그리기보다 나눠서 알려준다. ‘오늘 연산 문제집 2장 다 풀어’가 아니라 ‘1번부터 10번까지 풀어 보자’처럼 말이다. 목표는 아이의 현재 모습을 보고 결정한다. 5분도 앉아 있기 힘든 아이에게 20분이 필요한 일을 요구해선 안 된다. 부모가 같이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책을 읽으라고만 하지 말고 앞부분은 아이와 번갈아 한 줄씩 읽고, 뒷부분은 아이 스스로 읽고 줄거리를 말해달라고 해본다. 아이가 공부할 때 가족 모두 휴대전화, 텔레비전, 집안일을 멈추고 공부 환경을 조성해 준다.”
ㅡ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저는 게임 방송 유튜버가 될 거라 공부할 필요 없어요’라고 하는 아이들이 실제로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부가 필요 없는 직업은 없다. 유튜버가 되더라도 어떻게 하면 다른 유튜버와 다른 방송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국어 영어 수학 공부를 통해 우리는 뇌를 훈련하고, 싫어도 해보는 끈기 등을 배운다. 공부를 통해 나만의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돈 많은 백수가 꿈이다’, ‘아르바이트하며 살겠다’는 학생들도 봤다. 세상에는 먹고 자고 놀며 느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열심히 노력해 얻는 즐거움도 있다. 공부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으로 점점 더 나아지기 위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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