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공예박물관 전시1동 3층 기획전시실 ‘물질-실천’ 전시 현장.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보시는 전시품들은 모두 폐품으로 만들었어요. 한 때 버려진 물건들이 작품으로 재탄생한 모습입니다.”
28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학예사의 설명에 관람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예사가 가리킨 작품은 원형 장식구를 여러 줄로 꿰어 겹겹이 쌓아올린 원기둥 형태의 공예품이었다. 언뜻 고가의 장식품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바다에 떠다니는 부표 같은 해양 쓰레기를 모아 만든 작품이다. 전시를 찾은 한 시민은 “이미 수명을 다해 쓸모없다고 여겨진 물건에 새 생명이 불어나는 모습을 보니 기후위기 같은 인류 과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폐품 활용한 공예품 등 친환경 전시·행사
서울시는 최근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가 일상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예술을 통해 환경 문제를 성찰할 수 있도록 기후위기 대응과 자연 공존을 주제로 한 전시·행사를 잇따라 열고 있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시민 참여와 체험을 결합해, 멀게 느껴지는 기후 담론을 보다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날 개막한 특별기획전 ‘물질-실천’에서는 해양 쓰레기를 비롯해 각종 폐품이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했다. 흙과 먼지 등 무가치하게 여겨지던 재료들이 작가의 손길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폐신문지를 가공해 만든 벽돌 공예품, 심지어 인간의 소변을 유약으로 활용한 도자기까지 등장했다. 전시는 단순히 ‘재활용’ 차원을 넘어, 버려진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고 환경 파괴와 사회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관람객들은 폐신문지, 유리병, 파손된 가구 등 일상 속에서 쉽게 버려지는 물건들로 만들어진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감상했다. 오후 6시부터는 박물관 학예사와 참여 작가들이 직접 작품 설명에 나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작품 뒤에 담긴 제작 과정과 작가의 고민을 듣는 순간, 관람객들은 단순히 ‘전시를 본다’는 차원을 넘어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체험을 했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물질문명의 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제작문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시민들이 국내외 작가들의 창의적 실험을 통해 물질의 목소리를 듣고, 그 가능성을 직접 체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자연 공존 가치 알려
서울시는 대학과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자연 공존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지난달 27일까지 서울광장에서는 전국 26개 대학 건축학과 학생들이 참여한 ‘제14회 UAUS 파빌리온 기획전시’가 열렸다. 학생들은 나무, 벌집, 주상절리 등 자연의 생태 구조를 모방한 건축물을 선보였고, 시민들은 이를 감상하며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설계에 대해 고민했다.
또 일상에서 자연과의 공존을 체험할 수 있도록 생태공간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달 마포구 노을공원에 설치된 공공미술작품 ‘새로운 지층’이 대표적이다. 발밑 지층이 지상으로 솟아오른 듯한 이 작품은 흙, 일곱 그루의 나무, 돌과 식물로 구성됐다. 시민들은 사방이 열린 파빌리온 구조물 안을 거닐며 공원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장소의 역사와 자연환경, 시민의 활용도를 아우르는 예술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낮과 밤을 찾는 시민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제공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