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하는 건 최악”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3일 15시 04분


코멘트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교수 인터뷰


2011년 이후 1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청소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선 자녀가 심리적 위기에 놓였을 때 부모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와 인터뷰를 통해 학업과 친구 관계 등 여러 원인으로 자살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부모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짚어봤다. 한림대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홍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심리부검을 실시한 전문가다. 심리부검은 자살자 주변인 진술과 고인 기록을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가정에서 미리 알아챌 수 있는 자살 위기 신호가 있을까.

“언어·감정·행동 신호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희망이 없다’ ‘이번 생은 끝났다’는 말은 언어 신호에 해당한다. 무기력하거나 우울해하는 모습은 감정 신호다. 수면이나 식사 패턴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대표적인 행동 신호다. 다만 이런 모습들은 사춘기 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모습과 비슷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 직접적으로 ‘죽고 싶은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봐도 괜찮을까.

“괜히 아이들을 자극할까, 실제로 그렇다고 말할까 걱정돼 망설이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 묻는 게 원칙이다. 단, 다그치거나 추궁하듯이 물어봐서는 안 된다. ‘네가 힘들어 보여서 고민이 있는지 궁금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의도를 담아서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압박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때 아이들이 오히려 솔직하게 대답한다.”

―청소년 자해 문제도 심각하다.

“아이들에게 자해는 굉장히 힘들고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자해를 한 사진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리는 아이들이 많다. 이건 ‘나 좀 도와주세요’라는 신호인 셈이다. 이런 아이들이 흔히 ‘나는 스무살까지만 살겠다’ ‘한 달 뒤에 죽겠다’는 말을 한다. 뒤집어 보면 그때까지 희망이 있으면 살아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녀가 자해를 했다면 부모는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부모는 화를 내거나 죄책감을 느끼고, 현실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방문을 항상 열어두게 하거나 매일 확인하는 식으로 감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쉽지는 않지만 먼저 감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가 옆에 있고 네 말을 들어줄 준비가 돼 있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자해 충동이 올라올 때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부모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하면 좋다. 어렵다면 전문가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요즘 아이들은 정신과 치료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 부모들이 ‘나중에 취업에 문제 생기는 것 아니냐’ ‘이 정도는 치료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아이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부모가 해선 안되는 말은 무엇인가.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 이 정도로 힘들면 나는 벌써 죽었다’ ‘너 죽고 나 죽자’ ‘나도 어릴 때 힘들었는데 지금까지 괜찮으니 너도 견뎌라’ 같은 말은 더 큰 상처가 된다. 아이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주변에서 또래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엇보다 남은 아이들의 ‘후속 자살’을 막는 게 중요하다. 사건을 쉬쉬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세부적인 원인을 추측할 필요는 없지만, 떠났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아이들이 잘 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떠난 아이와 가까웠던 친구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청소년기를 함께 겪는 부모도 지치고 흔들릴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스트레스는 삶의 일부다. 완벽하게 살아야만 좋은 인생은 아니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작은 실패나 오점을 크게 받아들이면서 그 끝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대학을 못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 ‘친구 관계가 잘 안 풀리는 게 그렇게 큰 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아이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일상에서 자주 전하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다.”

※우울증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나 지인이 있을 때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으로 연락하세요.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