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콘에어’…필리핀 도피범 49명 전세기로 송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3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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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 온라인 도박단서 200억 횡령 기업인까지…역대 최대
피의자 1명당 경찰 2명이 양옆에서 ‘샌드위치 호송’

3일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아키노 국제공항에서 출국 대기 중인 한국인 범죄 피의자들의 모습. 경찰청 제공
3일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아키노 국제공항에서 출국 대기 중인 한국인 범죄 피의자들의 모습. 경찰청 제공
3일 오후 5시 48분경 인천국제공항 F게이트. 필리핀에서 검거된 한국인 범죄 피의자 49명이 수갑을 찬 채 호송관 양옆에 붙들려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관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대기했고, 피의자들은 모자나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푹 숙이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줄지어 나온 피의자 가운데는 10, 20대로 보이는 앳된 얼굴도 적지 않았다. 손목에는 수갑을 가리기 위해 검은 천이 감싸져 있었다. 공항 이용객들 사이에서는 “범죄자야?” “몇 명이야?”라는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경찰청은 이날 전세기를 투입해 필리핀으로 도피했거나 필리핀에서 검거된 범죄 피의자 49명을 국내로 강제 송환했다고 밝혔다. 이번 송환은 2017년 47명의 피의자를 필리핀에서 송환한 이후로 역대 최대 규모다. 송환된 이들 중에는 기업을 운영하며 200억 원가량의 자금을 횡령하고 16년간 도피한 60대와, 2018년부터 약 5조3000억 원 규모의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범죄단체 조직원 10명 등이 포함됐다. 국제경찰기구(인터폴) 적색수배가 발부된 이들만 45명이었다.

피의자들은 이날 오전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아키노 국제공항에서 ‘immigration deportee(이민 추방자)’라고 적힌 주황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오른쪽 가슴에 1번부터 49번까지 번호와 영문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았다.

출국 심사를 마친 이들은 한국 정부가 약 1억 원을 들여 전세 낸 보잉 737 국적기에 차례로 올라탔다. 기내에서 대기하던 한국 경찰은 이들이 탑승하자마자 권리를 고지하고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피의자 1명을 사이에 두고 호송관 2명이 양옆에 앉는 ‘샌드위치’ 좌석 배치가 이뤄졌다.

전세기에는 호송관 외에도 지원 경찰 20명과 필리핀 이민청 직원 12명 등이 함께 탑승했고, 테이저건과 포승줄 등도 갖췄다. 승무원은 전원 남성이었으며 경찰병원 소속 의료진도 등승했다. 기내식은 안전을 위해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는 샌드위치가 제공됐다. 비행 내내 긴장감이 감돌아 기내는 조용했다고 한다.

오후 4시 40분경 전세기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고, 피의자들은 안전을 위해 전용 입국심사대와 수화물수취대를 거쳐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이어 곧바로 호송차량에 탑승해 각 사건 관할 경찰서로 이송돼 조사받았다. 박재석 경찰청 국제공조담당관은 “필리핀 당국과의 공조로 신속히 송환과 수사가 이뤄진 만큼 교민 사회에 안심을 줄 수 있고, 공범 추적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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