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혼밥 대신 ‘함께 라면’을… 1인가구 마음 데운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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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 소통공간 만들자”
6월 동구에 무료 라면 가게 오픈
아이-노인 등 일 평균 50명 찾아
라면 1개 먹고 5개 기부하기도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해 올 6월 개소한 부산 동구 수정동 ‘끼리 라면’에서 어르신들이 라면을 먹고 있다.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제공
1일 낮 12시 반쯤 부산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 인근 주택가. 한산한 골목과 달리 한 건물 1층은 10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통유리 출입문을 열자 라면 익는 냄새가 퍼졌다. 유리창을 따라 놓인 긴 나무 식탁에 7명이 앉아 종이 그릇에 담긴 라면을 먹고 있었다. 한 초등학생은 엄마와 학습지 숙제를 이야기하며 짜장라면을 먹었고, 80대 남성 두 명은 좀처럼 시원해지지 않는 날씨를 걱정하며 후루룩 소리를 냈다. 배달 오토바이를 세워둔 30대 남성은 빈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먹을 라면을 골랐다. 식탁 반대쪽 벽의 진열대에는 짜장, 우동 등 라면 수십 개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라면을 끓여주는 조리기계 2대도 설치돼 있었다. 이곳의 라면은 무료다. 누구든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라면 한 봉지를 먹을 수 있다.

부산 동구 수정동 ‘끼리 라면’의 진열대에 다양한 라면이 놓여 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올해 6월 20일 문을 연 ‘끼리 라면’의 풍경이다. 이름에는 ‘우리끼리 라면 끓여(끼리) 먹자’는 의미가 담겼다. 부산 동구는 부산종합사회복지관과 함께 은둔형 외톨이나 사회적 고립을 겪는 1인 가구 등이 라면을 먹으며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도록 이 공간을 마련했다.

동구는 고향사랑기부제로 모인 기금 2000만 원과여러단체·개인의후원금을합쳐총 4000만 원으로 이곳을 만들었다. 주민 주도로 운영되며, 공간이 카페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것도 주민 제안에 따른 것이다. 운영위원 3명은 ‘개인당 30분 이내 이용’ ‘술 반입 금지’ 같은 규정을 직접 정했다. 동구시니어클럽에서 파견된 노인 2명은 처음 온 방문객에게 라면 끓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하루 평균 50명이 찾는다. 6월 20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방문객은 2402명으로 집계됐다. 혼자 사는 어르신의 방문이 가장 많았고, 요양보호사가 동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인근 부산종합사회복지관을 찾는 아동과 가족도 자주 들른다. 복지관 관계자는 “가출한 10대 청소년이 라면을 먹으러 왔다가 상담으로 이어져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부의 장’ 역할도 하고 있다. 이날 김윤정 씨(55)는 라면 1개를 끓여 먹는 대신 5개들이 포장 라면을 기부했다. 김 씨는 “운영 취지가 뜻깊고, 모르는 분들과 함께 라면을 먹으며 대화하는 게 재밌어 종종 찾는다”고 했다. 박인선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장은 “이런 따뜻한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며 기부금을 전달했다.

동구와 부산종합사회복지관은 범일동 등 다른 동네에 2호점을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관 관계자는 “반찬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냉장고를 설치해 단무지 등을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꼐 라면#끼리 라면#부산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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