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달 나선 새신랑 목숨 앗아간 음주 뺑소니

  • 뉴스1

코멘트

휴가 군인 무면허·음주운전에 뺑소니까지…징역 10년 선고
뇌사 판정 뒤 장기기증, 4명의 생명 살리고 떠난 착한 청년

당시 사고 현장./뉴스1
당시 사고 현장./뉴스1
2023년 12월 13일 새벽 찬 공기가 매섭게 스며들던 충북 청주의 겨울 거리.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던 A 씨(31)는 두툼한 점퍼를 여미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가게 매출이 줄자 그가 직접 배달까지 도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A 씨는 결혼 47일이 된 신혼부부였다. 아내는 일손을 놓지 못하는 남편이 안쓰러웠지만 “곧 다 잘될 거야”라며 함께 미래를 그려왔다. 그러나 그날 밤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사고 현장 뒤로한 채 속도 높인 군인

배달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은 0시 26분. 청원구 내덕동의 적막한 사거리에 굉음이 울렸다. 검은색 K8 승용차가 달려와 A 씨의 오토바이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술에 취한 21살 군인 B 씨의 발은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로 향해 있었다. 시속 70㎞를 훌쩍 넘긴 차는 순식간에 오토바이를 날려버렸고 A 씨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몸이 튕겨 나갔다.

그러나 충격의 순간에도 멈춤은 없었다. 옆자리에 있던 여자 친구가 다급히 “세워 달라”며 애원했지만 B 씨는 외면했다. 오히려 속도를 더 높이며 CCTV가 드문 골목길로 몸을 숨겼다. 추적을 피하려 휴대전화와 겉옷까지 내던진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집으로 숨어들었다.

경찰은 밤새 CCTV를 뒤지며 그의 행적을 쫓았다. 그리고 사고 발생 10시간여 만에 찾은 곳은 서원구의 한 주택.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저 잠을 자고 있는 B 씨가 있었다.

“착한 아들이었는데…”

사고 소식은 곧 가족에게 전해졌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 아니냐”며 전화를 끊을 뻔했다는 아버지는 병원 수술실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의료진의 냉정한 통보였다.

아버지는 경찰 조사를 받으러 온 다음 날 취재진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군 전역하고 집이 어렵다고 대학까지 그만두더니 한 번도 용돈 달라는 말을 안 했습니다. 직접 벌어서 가족을 챙겼던 착한 아들이었어요.”

아내는 울음을 삼키며 짧게 전했다.

“가정을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성실한 남편이었어요”

4명의 생명 살린 마지막 길

12월 15일 A 씨는 끝내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마지막 가는 길, 좋은 일을 하고 떠나게 하자.”

그의 심장과 두 개의 신장, 간은 다른 네 사람에게 이식돼 새로운 생명을 살렸다.

아버지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들도 이 선택을 기뻐할 겁니다. 마지막까지 남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택했으니까요.”

군사법원 징역 10년…항소심 기각

가해자 B 씨는 이미 2022년 음주 사고로 면허가 취소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32차례 무면허 운전을 했고 어머니 명의로 공유 차량을 빌려 법망을 피해 다녔다.

사고 당일 혈중알코올농도는 0.11%. 면허 취소 기준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당시 군사법원은 “피해자를 구호하지 않고 도주해 한 가정의 가장을 잃게 했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B 씨는 항소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하며 원심을 확정했다.

결혼 47일 만에 아내 곁을 떠난 남편. 대학을 포기하고 가족을 먼저 챙겼던 아들. 밤늦게까지 배달하며 가정을 지키려 했던 청년.

이제 그의 자리는 비었지만, 장기기증으로 이어진 생명은 그를 기억한다.

(청주=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