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장 42명 “사법독립 보장돼야, 개혁논의에 사법부 참여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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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30분 ‘마라톤 회의’
“업무과중 대법관 늘릴 필요 있지만… 급격한 증원땐 부작용 초래 우려”
“외부서 법관 직무평가 독립 침해”
“내란재판부 위헌심판 제청 가능성”

조희대 대법원장, ‘법원의 날’ 행사
조희대 대법원장(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이동원 양형위원장(전 대법관), 노태악 이흥구 오경미 대법관(앞줄 오른쪽부터) 등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법원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조 대법원장은 사법개혁과 관련해 “국회에 사법부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고 소통과 설득을 통해 국민을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조희대 대법원장, ‘법원의 날’ 행사 조희대 대법원장(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이동원 양형위원장(전 대법관), 노태악 이흥구 오경미 대법관(앞줄 오른쪽부터) 등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법원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조 대법원장은 사법개혁과 관련해 “국회에 사법부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고 소통과 설득을 통해 국민을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대법관을 늘릴 필요는 있지만, 지나치게 빠른 속도의 증원은 부작용만 부를 것이다.”(재경지법 판사)

12일 한자리에 모인 전국 법원장 등 고위 법관 42명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5대 사법제도 개편안에 대해 이 같은 현장 의견을 언급하며 난상 토론을 벌였다. 법원장들은 이날 공식 안건은 아니었지만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한 위헌 우려도 표명했다고 한다. 법원이 기존에 사건을 무작위 전산 배당하던 관행을 깨고 특정 사건 심리를 위한 재판부를 별도로 구성할 경우 결과에 대한 승복을 비롯해 사법 신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다.

● “급격한 대법관 증원은 부작용 우려”

법원장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오후 9시 반까지 ‘마라톤 회의’를 이어가면서 난상 토론을 벌였다. 회의 직후 대법원은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므로 개선 논의에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공식 안건은 대법관(기존 14명)을 2배 수준인 26∼30명으로 증원,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 정당 추천 인사들이 포함된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 영장에 대한 사전 심문제 도입 등이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현재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건수가 과도하게 많은 문제가 있는 만큼 대법관 증원을 포함한 상고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관이 한 해 처리하는 사건이 3000건 안팎으로 과도해 처리가 지연되거나 구체적 심리 없이 원심을 확정하는 심리불속행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4명 정도 소규모 증원이 적정하다는 의견 등도 제시됐다”고 밝혔다. 한 참석자는 “대법관만 늘어나면 가분수 같은 조직이 돼 국민들이 1, 2심에서 적절하고 신속한 사법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우려가 많았다”고 말했다.

대법관 증원과 함께 상고심사제나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등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이 한 번에 10∼20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면 대법원이 정치에 예속될 수 있어 사법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와 변호사단체 등이 추천한 인사들로 위원회를 꾸려 법관 직무를 평가하고 결과를 공개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대다수 판사들이 위헌 소지가 있고 사법권 독립 침해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밝혔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정치권에서 관심이 있는 사건과 관련해 입맛에 맞지 않게 판결한 법관에 대해 나쁘게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결국 판사의 판결 이력, 성향을 분석해 압박하거나 배제하는 자료로 활용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 “내란특별재판부 삼권분립 위반 소지”

공식 안건은 아니었지만 참석한 법원장들 사이에서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이미 재판부에 있는 사건을 입법부 주도로 특정 재판부에 배당하면 견제와 균형삼권분립 원칙상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한 수석부장판사는 “솔직히 이러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재판 중인) 지귀연 부장판사가 무죄 선고할까 겁나서 특별재판부를 도입하려는 건데, 오히려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명분만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피고인이나 법관들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할 가능성이 크다”며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법원의 재판이 정지될 수 있어 ‘내란 혐의’ 피고인 재판도 지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12일 “국회 입법 사항이란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사법부가 헌법을 뛰어넘는, 국민의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그런 행태를 보인다면 결국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그것을 제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헌 지적을 일축하면서 얼마든지 입법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해 사법부를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날 “국회에 사법부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고 소통과 설득을 통해 국민을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사법개혁 추진에 대해 대법원장이 공식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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