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2025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 공개회’에서 타종이 진행되고 있다. 에밀레종 이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종이자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2년 만에 일반에 공개된 이번 행사에는 사전 추첨을 통해 선정된 771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771은 성덕대왕신종이 조성된 연도다. 2025.09.24. 경주=뉴시스
“묵직한 종소리가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더니 다시 등 뒤로 스며드는 기분입니다.”
24일 오후 7시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국보 성덕대왕신종 종각 앞. 고대하던 첫 번째 종소리가 울리자 부산에서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왔다는 류수현 씨(33)가 감격에 찬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밤공기를 가르며 한없이 퍼져 나가던 종소리는 사그라드는 듯하다가 다시금 약한 울음을 내뱉어 냈다.
이날 경주박물관에서는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 공개 행사가 열렸다. 신종 소리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것은 2003년 개천절 이후 22년 만이다. 한때는 매년 마지막 날마다 종소리로 새해의 시작을 알렸었다. 하지만 균열 등 파손이 우려되자 1992년 제야의 행사를 끝으로 공개 타종이 중단됐다.
이후 박물관은 1996년과 2001~2003년, 2020~2022년 3차례에 걸쳐 비공개 타음조사를 실시했다. 성덕대왕신종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종이다. 종의 높이는 3.66m, 무게는 18.9t에 달한다.
공개타음 행사가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시민들의 관심은 높았다. 박물관은 신종을 완성한 771년을 상징해 이날 일반인 771명을 초대했는데, 모집 단계에서 3800명이 몰릴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이날 신종은 1분~1분 30초 간격으로 모두 12차례 울렸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타음조사를 통해 고유 진동 주파수 변화 등에 관해 정밀히 분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주박물관은 2029년까지 매년 9월마다 타음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진동 주파수 측정을 위한 타음조사 외에도 타종 전후의 외형 변화, 표면 부식도 파악을 위한 고해상도 정밀 촬영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신종을 실내에서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신종관을 건립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앞으로 진행할 타음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최적의 종소리를 만들 수 있는 개폐식 공간으로 설계하겠다”며 “국민께 원음을 들려드릴 수 있는 신종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제35대 왕인 경덕왕(재위 742∼765)이 아버지인 성덕왕(재위 702∼737)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해 그 아들인 혜공왕(재위 765∼780)이 771년에 완성했다. 원래 통일신라시대 사찰인 봉덕사에 봉안돼 봉덕사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영묘사를 거쳐 경주읍성 남문 바깥의 종각에서 시각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5년에 경주부 관아였던 옛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현재 위치에 신축되면서 야외 종각에 전시하게 됐다.
성덕대왕신종은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도 익숙하다. 종소리가 마치 어머니를 찾는 아이의 곡소리와 비슷하다며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성덕대왕신종이 내는 특별한 소리의 핵심인 ‘맥놀이(강약이 반복되며 길게 이어지는 소리)’현상 때문이다. 신종의 고유 주파수인 64.18Hz와 64.52Hz가 서로 간섭하면서 소리가 강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하며 일어난다. 신종이 미세한 비대칭성을 보여 2개의 주파수를 만들어내 일어나는 현상이다. 신종 소리가 끊어질 듯 되살아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리를 좋게 하기 위해 종을 만들 때 아이를 함께 넣었다는 전설이 있어 성분검사도 실시됐으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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